어린 시절의 추억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같이 /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무들같이 / 너도나도 씩씩하게 어서 자라서 / 새 나라의 기둥 되자 우리 어린이’
초등학교 때, 교문에 들어서면 늘 동요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 음악에 발맞춰 걸으며 처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던 기억이 새롭다. 짬나는 대로 친구들과 함께 술래잡기, 비석치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자치기, 말타기, 팽이돌리기, 썰매타기, 연날리기를 하며 즐겁게 뛰놀았다. 어둑할 무렵 “아무개야! 밥 먹어라”하는 소리가 들리면 아쉬움을 뒤로 하고 친구들과 헤어지고는 했다.
그렇다고 개구쟁이처럼 뛰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철따라 시원한 마루와 뜨끈한 아랫목에 엎드려 동화책에 빠져들었다.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읽으며 무인도에서의 흥미진진한 삶과 프라이데이와의 우정을 꿈꾸었고, 마크 트웨인의 「톰소여의 모험」을 보며 톰과 허클베리의 통쾌한 모험을 동경했으며,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을 대하며 짐과 해적 실버의 가슴 졸이는 대결을 머릿속에 그렸다.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미지의 세상을 신나고 자유롭게 누볐다.
오늘날 아이들의 모습
올해는 어린이날을 제정한 지 90주년 되는 해이다. 1923년에 색동회를 중심으로 방정환 선생과 뜻있는 이들이 어린이를 소중히 여기고,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어린이는 명실 공히 ‘새 나라의 기둥’이자 우리의 꿈과 희망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적은 어린아이를 ‘대접하여’ 이르는 어린이라는 말을 쓰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요즘 어린이들이 밖에서 뛰노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1.22명으로 세계 최하위권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정이 그렇다면 어린이는 그 어느 때보다 잘 대접받아야 할 터이다. 그런데 그 귀한 어린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떤 어린이는 햇볕이 내리쪼이는 탁 트인 마당이 아니라 무균 처리된 실내 놀이터에서 얌전히 놀고 있다. 어떤 어린이는 드넓은 산과 강과 들이 아니라 어두침침한 방에 홀로 앉아 게임기와 컴퓨터 속의 캐릭터와 마주하고 있다.
그나마 친구들과 함께 있는 어린이들도 서로 눈을 마주치기는커녕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다.
학교에서 오자마자 가방을 바꿔 들고 학원을 전전해야 하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친구를 만날 시간도, 함께 뛰어놀 시간도 없다. 그런 처지에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은 읽을 엄두도 나지 않고, 읽고 싶지도 않다. 늘 곁에 붙어있는 스마트폰과 컴퓨터와 TV가 친구 역할을 대신해준다. 시시한 동요보다는 세련된 아이돌 가수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따분한 동화책보다는 휘황찬란한 오락프로그램에 빠져드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보고 들으며 느끼고 생각해야 할 귀찮은 일까지 알아서 자막으로 보여주니 고맙기까지 하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야한다는 말은 알게 모르게 공염불이 되고 만 셈이다.
어린이들에게 심어줄 꿈과 희망
‘어린아이는 괴는 데로 간다’는 속담처럼 어린이는 사랑하고 돌보아 주는 대로 따라가게 마련이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와 TV에 몰입한 어린이들이 동요를 부르고, 동화를 읽게 해야 한다. 그때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 소위 EQ라 불리는 감성지수도 높아질 것이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창의성도 커질 것이다. 또한 어두운 방에 홀로 있는 어린이들이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마음껏 뛰놀게 해야 한다. 그래야 온몸으로 부딪쳐 미지의 세계를 알고자 하는 탐험심, 마음과 힘을 합해 일을 성취하고자 하는 협동심, 그리고 대자연의 생명에 대한 경외심도 자랄 것이다.
대학에서 우리의 고전문학과 구비문학을 연구하고 교육해온 필자는 「세상을 바꾼 위대한 책벌레들」을 비롯한 열댓 권의 동화책을 썼다. 어린이들의 가슴 속에 꿈과 희망의 작은 씨앗을 심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제 우리가 합심해서 길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 속이 아니라 백배의 열매를 맺을 ‘좋은 땅’(마르코 4, 3-8)에 ‘좋은 씨앗’을 뿌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개인주의나 물질만능주의, 출세지상주의의 씨앗이 아니라 정신적·인성적 가치를 지닌 씨앗을 말이다. 오늘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씨앗을 심어주고 있는가.
김문태 교수는 현재 가톨릭대학교 ELP(Ethical Leader Path) 학부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연구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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