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내내 외신 기사를 담당해서 가톨릭계 통신사들이 보내오는 교황의 수많은 사진들을 쉽게 접했다. 대개 교황의 사진은, 특히 교황이 해외를 순방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높은 뉴스가치를 지니고 있어 우선적으로 신문에 싣는다. 그래서 이전의 교황들이야 볼 기회가 없었지만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 그리고 현 교황 프란치스코의 사진들은 수없이 보고 또 보는 행복을 누려왔다.
연예인들의 공항 패션이 자주 화제이듯, 교황이 해외 순방시 비행기에서 내리거나 공항에서 현지 정치인들의 영접을 받는 모습은 거의 대부분 화제가 된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경우에는 종종 비행기 트랩을 내리면 땅에 입을 맞추곤 했다.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5월 3일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허리를 굽혀 땅에 입을 맞추고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이라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의 해외 순방길에 기자들의 시선을 끈 것 중 하나는 빨간 구두였다. 흰색 수단에 역시 새하얀 양말, 그리고 끈 없이 날렵하게 빠진 빨간색의 품격 있는 구두는 영대에 달린 금색 술과 어울려 세계적인 모델 뺨치는 맵시를 보여주곤 했다. 색감에 문외한인지라 파란 바지에 검정 셔츠, 녹색 추리닝에 노란 티를 입고도 4대문 안을 기웃거리는 필자도 빨간 구두와 흰색 수단으로 트랩에서 연설대까지 레드 카펫을 걷는 교황의 패션 감각은 놀라웠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얼마 전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해외 순방길에 나섰다. 7월 22일 브라질을 향해 비행기를 타러 가는 교황을 이탈리아 엔리코 레타 총리가 배웅했다. 격의없이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은 무척 다정해보였는데, 이색적이게도 교황의 왼손에는 투박하고 큼직한 까만 가방이 들려 있었다. 교황은 총리의 배웅을 뒤로 하고 트랩을 올라가는데, 한 손으로는 난간을 잡고 가방을 든 손으로 긴 수단을 들어 올려 옷이 발에 걸리지 않도록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누구도 교황의 가방을 들어주지 않았다. 버릇없게도. 청년대회 일정을 마치고 리우데자네이루 공항에서 트랩을 오를 때도 아무도 가방을 들어주지 않았다. 다시 로마에 내릴 때도 그랬다.
필자는 비슷한 모습을 이미 지난 6월 미국의 버지니아주에 있는 한 한인 성당에서 볼 수 있었다. 마침 한인 공동체가 함께 하는 미국 성당 리모델링 축복식이 있던 날이었다. 본당 온 식구들이 주교님을 마중 나왔고, 멀리서 조금은 색이 바랜 자동차가 먼지를 날리며 오고 있었다. ‘설마...’ 하는 순간, 앞 유리창 3분의 2는 거의 채울 듯한 거구의 주교님께서 힘겹게 운전석에서 내리셨다.
그리고 트렁크를 벌컥 여시더니, 바퀴 달린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어내려 아스팔트 위를 ‘털 털 털’ 거리며 끌고 오신다. 환영의 인사를 하는 주일학교 아이들의 꽃다발 세례를 받고, 호탕하게 웃은 뒤, 주교님은 다시 가방을 털털거리며 끌고 가 성당 계단의 턱 위로 ‘텅 텅’ 소리가 나도록 끌어올려 성당 안으로 사라지셨다. 아무도 운전을 해주지 않았고, 누구도 큰 가방을 대신 끌어주지 않았다. 버릇없게.
사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러한 모습은 교황으로 선출된 첫날부터 볼 수 있었다. 재위 첫날 교황은 그때까지 머물렀던 숙소에 들러 숙박료를 내고 가방을 건네받았으며, 하루 일정을 마치고 귀가할 때도 전용차량을 두고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버스를 이용했다. 교황의 이러한 모습, 소탈한 모습은 서민 가톨릭 신자들에게 매력적이다. 어떤 이들은 새 교황님 덕분에 성당 갈 맛 난다고 심하게 말하기도 한다.
더 바란다면, 새 교황님의 개인적인 매력이 제도적이고 구조적으로도 교회의 미덕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교황님도 주교님도 버스를 타고, 당신 가방을 손수 드는 그런 미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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