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으로 두려움에 떠는 미혼모. 어렵게 출산을 선택하고도 양육이 불가능해 입양 신청을 하려 했지만, 입양이 안 되거나 파양이 되었을 경우 가족관계증명서에 기재된 “혼외자녀” 라는 흔적이 그대로 남는다는 것을 알고 심한 갈등을 겪는다. 입양특례법의 출생신고가 아동유기를 부추기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개정 입양특례법에 의하면, 입양이 되면 기록부에서 삭제가 되지만 파양이 되면 평생 기록이 남는다. 사회적 편견과 미혼모에 대한 복지 지원이 열악한 한국사회에서는, 선진국에서와 달리 출생신고 자체가 공포의 조항이다.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실적 상황에 대한 진단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의지할 곳 없이 극단에 몰린 미혼모는 유기라는 범죄를 상상한다.
입양특례법 재개정 반대 측에서는 아동의 인권을 위해 뿌리찾기를 가능케 하려면 반드시 출생신고를 해야 하고, 출생신고는 국민의 의무라고 강조한다.
이 법을 깊이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위의 주장이 당연한 말 같이 들릴 것이다. 그러나 재개정 추진위에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한다.
첫째, 생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생신고를 않더라도, 입양이 되면 친양자관계사실증명서, 법원, 입양기관, 중앙입양원 등에 기록이 남는다. 아동이 성년이 되어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기록을 볼 수 있어 뿌리찾기가 가능하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떤 입양기관에서 상담을 받았는지, 왜 생모가 자신을 입양 보냈는지 등 상세한 기록이 있다. 단 생모생부가 원치 않을 경우 생부모의 인적사항은 열람할 수 없다. 그렇다면 뿌리찾기를 위해서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반대 측의 주장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 출생신고의 의미가 뿌리찾기를 위함이라고 강조했던 이들이 논리에 궁색해지자, 출생신고는 국민의 의무라며 다시 케케묵은 카드를 꺼내 든다.
‘출생신고는 국민의 의무, 입양이 되면 국민의 의무에서 제외, 입양이 안 되면 평생 국민의 의무를 져야 함’, 이런 궤변이 어디 있는가. 게다가 장애아, 남아, 연장아의 부모 같은 경우에는 출생신고를 하여 입양을 보내려 해도 대부분 입양이 되지 않아 평생 기록이 남는다. 미혼모가 결혼을 했을 경우 남편이나 직계가족이 그녀의 위임이 없어도 전부사항 증명서를 뗄 수 있어 혼외자녀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만인에게 평등해야할 법이, 입양의 성사 여부에 따라서 공적인 기록을 삭제 또는 삭제해주지 않는 것이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미혼모의 41%가, 출생신고의 두려움 탓에 어쩔 수 없었다는 사연을 편지로 남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입양특례법과 아동 유기가 전혀 관계없다고 주장하는 보건복지부와 재개정 반대 측은, 미혼모를 벼랑 끝으로 몰고 아동유기를 방조하는 논리를 일삼는 게 아닐까 싶다.
국민을 놀라게 했던 각종 대형 사고들의 공통점은 안전 불감증이 원인이다. 미리 점검하고 예방하지 않으면 막을 수 없다. 입양특례법 재재정 추진은 그러한 사고를 막자는 것이다. 반대 측에서 주장하는 “과도기이니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 라는 안일함이야말로 사고를 부르는 결정적 요인이다.
그 어떤 상황이라도 생명을 실험할 과도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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