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웨딩드레스는 색시의 웃통을 반 넘게 훌러덩 벗긴다. 평소에 조신하던 처녀들까지 그날만큼은 과감해져서 등짝 반, 앞가슴 반을 서슴없이 깐다. ‘까다’니? 맞아 죽을 발언이다. 죄송. ‘드러낸다’로 고친다. 신부들이 다 똑 같아서 속상해 그랬다.
그러나 순백의 반짝이 드레스 안에서 보일 듯 말 듯 한 젖무덤을 엿보고 “오우, 섹시한데” 감탄한 적도 있다. 죄송, 죄송. 계속 맞아죽을 소리만 한다. 사실은 넓은 소매에 솜구름 장식이 목까지 잔뜩 붙은 40년 전 나의 웨딩드레스 얘기를 하려던 참이다. 이 더위에 쓸데없는 얘기도 한다. 근데 쓸 데 있는 얘기만 하는 사람도 있나. 아이고, 또 죄송. 오늘 내가 더위를 먹어 액정이 깨졌나보다.
1970년대, 그때 신부(新婦)들도 요즘 못지않게 앞뒤 팍팍 파서 마음껏 몸매자랑을 했다. 그런데 나는 어디서 들었는지 지금도 궁금하지만, 웨딩드레스는 요담에 수의로 입는 건 줄 알았다. 얻은 것도, 빌린 것도 아닌, 맞춤집에서 버젓하게 맞춘 내 드레스는 그래서 처음부터 구닥다리였다. 믿어 주시길 바라는데, 나는 ‘긴 머리 짧은 치마’의 튀는 신세대였다. 그때 그 디자이너는 스물세 살 예비신부가 그 옷을 입고 관 속에 누운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줄은 몰랐을 거다.
드레스 앞가슴에는 하얀 천을 동그랗게 말아 솜구름처럼 붙이겠다고 했는데 ‘늙어 쭈글쭈글해진 얼굴에 좀 웃기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딴전 피우고 있는 걸 들킬까봐 솜구름 디자인에 감격한 척 일부러 뒤로 넘어지는 연기까지 했었다.
지난해 공연했던 <꽃상여>의 ‘아씨’는 “꽃가마 타고 시집 와서 꽃가마 타고 저승” 가는 게 삶의 목표다. 그래서 자칫 한눈팔다 꽃가마 승차 자격이 박탈 될까봐 아씨는 거두절미 허벅지를 꼬집으며 수절한다.
수의 운운은 아마도 그런 ‘아씨’나 할 법한 생각이지만 일편단심 사랑할 인간도, 백년해로할 원수도 없으니 그까짓 걸 두어 무엇하랴. ‘의로운 행위’를 하기만 한다면, ‘희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 한 벌이 생긴다. 그걸 떨쳐입고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갈 거다. 그거면 충분만족이다. 넘치게 충분하고 넘치게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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