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는 한우 고기를 상상해보라. 마블링이 꽃을 피운 빨간 생고기의 핏기가 살짝 가시고 노릇한 갈색 빛을 띠려는 찰나, 젓가락을 가져다 얼른 집어 먹게 될 것이다. 육식을 좋아하는 기자도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꼴깍 넘어가는 순간이다.
우리는 흔히 소고기의 질은 마블링에서 결정지어진다고들 말한다. 육질 사이사이 하얀 지방층이 고르게 퍼져 고기가 부드럽고, 씹는 맛이 좋다는 인식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이미 마블링에 길들여져 있다.
지난 주, ‘자급퇴비 가농소 입식운동’ 10주년을 맞아 입식소를 키우며, 유기 순환적 농사를 짓고 있는 안동교구 쌍호분회를 찾았다.
분회원들은 생장을 촉진하는 곡물 사료, 약품 등을 배제하고, 친환경 농사를 통해 얻은 부산물을 사료로 주는 등 정성을 다해 소를 키우고 있었다.
속성으로 칼로리가 높은 곡물 사료를 먹인 일반 소고기와 비교한다면 친환경 사료를 먹고 자란 소의 고기는 마블링과 같은 화려한 겉보기 등급은 부족할 수 있지만 영양을 충실히 갖춘 건강한 먹을거리임에는 분명하다.
그래도 겉보기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눈에는 친환경 농사 부산물로 키운 소고기는 성에 차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정성이 더해진 만큼 가격도 더 높기에 소비자들의 선택 과정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쌍호분회에서 만난 한 분회원은 “정말 좋은 먹을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지만 마블링에 대한 편견으로 소비자에게 외면당하는 현실을 볼 때면 안타깝다”고 밝혔다.
기사를 쓰는 동안 현장에서 분회원이 건넨 복숭아 한 알이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다. 그가 건넨 복숭아도 유기순환적 방법으로 기른 소고기와 같이 겉보기에는 소박했지만, 그 맛은 꿀과 같이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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