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술자리 농담 중에서,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격언(?)이 있다. 폭넓게, 여러 상황에 두루 적용되는 이 말의 어감은 삶의 가장 은밀한 영역을 건드리면서도, 흔한 일상사를 지칭하는 해학을 담고 있어서 매우 흥미롭다.
옛날에야 ‘로맨스’라는 용어가 없었을텐데, 굳이 말하자면 ‘아전인수’(我田引水), 즉 ‘제 밭에 물 대기’ 정도로 알아들을 수 있겠다. 그런데 ‘아전인수’로는 ‘로맨스’와 ‘불륜’이라는 용어의 어감이 갖는 은근한 퇴폐의 냄새를 표현할 수 없으니, 이 격언은 유사한 의미를 품고 있되, 훨씬 더 대중적이고 선정적이다.
하지만 어쨌든, 두 가지 표현이 모두 지칭하는 것은 우선은 자기중심적 사고, 나아가서는 이율배반과 이중적인 잣대의 가치관에 대한 비난이다.
대개 자기중심적 사고는 다소 인지적 오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 곧 만사를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기대하는 경향이다. 예를 들어 심각한 사고나 자연재해가 발생해도, 어떻게든 자신은 화를 면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 경향이 인간의 생존 본능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즉, 생존을 위해서 주위의 모든 상황을 내게 유리하게 남에게는 불리하게 생각함으로써 긍정적인 전망을 갖게 하고 생명의 위험을 감소시키려는 본능적 사고라는 것이다. 착각이라고 해도 말이다.
자기중심적 사고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유아기적 사고방식. 유아들은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볼 수 있으면 남도 자신을 볼 수 있고, 자신에게 안 보이면 다른 사람도 자신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숨바꼭질을 하다가 자신이 술래를 못 보면, 술래도 자신을 못보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고 자기중심적 사고가 유아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둘러보면, 이러한 유아적인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다 큰 어른들을 숱하게 본다. 하버드대 뇌과학자 카우프만은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할 때, 음식, 돈, 섹스로 쾌감을 느낄 때와 똑같은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서,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얘기’를 할 때, 뇌는 강렬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회적 지위가 높고 권력을 쥔 사람일수록 자기중심적 사고가 강화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자기중심적 사고는 인간에게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비난할 수 없는 본능적 경향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남는 의문은?
인간은 다 커서도 그저 유아기적 사고의 수준에 머물러도 되는 것일까? 사냥꾼의 총소리에 덤불 사이에 머리만 처박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짐승 수준에 있어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마더 데레사 수녀님처럼 남을 위해서 평생을 헌신하는 분은 그저 성인(聖人)이니까 남 얘기로만 알아들으면 되는 걸까? 성당에서 매주 듣는 예수님의 설교는 무의미한가?
나와 남에게 들이대는 삶의 규율, 사랑과 정의의 잣대가 그리 달라서야 과연 스스로를 신앙인이나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삶의 영역에 따라서,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신앙생활 따로, 일상의 삶을 따로 산다면 머리만 처박는 사슴, 하릴없이 떼쓰는 유아에 머물 뿐이다.
신앙인이 보이는 이율배반적인 삶의 태도와 가치, 신앙이 가르치는 바를 때로는 ‘로맨스’, 때로는 ‘불륜’으로, 이중적으로 이해하는 그런 사람이라면, 차라리 신앙이 없는 이가 자기 확신에 따라 멋대로 사는 것보다도 못한 것은 아닐지? 온갖 죄 중에 거짓됨과 위선의 죄만은 면제받을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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