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시간 앞에 모두를 객관화시키는 하느님의 또다른 메시지를 전해준다. 하느님은 역사를 통해 정의로우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일을 겪은 사람들을 징검다리 삼아 그들의 지혜를 우리에게 전해주려 한다. 역사연구는 이것을 알아 듣기 위한 노력이다.
역사, 하느님의 정의
8월 16일, 17일 대전교구 대철회관에서 한국교회사 연구자들이 모였다. 각 교구에 소속된 10여 개 교회사연구소 소장 신부 및 교회사 연구자들 35명이 머리를 맞댔다. 이처럼 적지 않은 연구자들이 모인 광경을 본다면 감회에 젖을 먼저 간 선배들이 있다.
아직 이 자리에 나올 수 있는 은총을 입은 김진소 신부는 옛날을 말한다. 그는 1976년 어느 곰탕집에서 있었던 일을 소회했다. “최석우 신부님, 신부님, 저 이렇게 셋이 있으면 교회사 연구는 해냅니다”라고 젊은 교수가 했던 말을 되뇌었다. 교회사연구소를 존재하게 한 초석들의 이야기다. 이 셋 중 한 명은 서울 한복판에서 교회사연구소를 세워 죽기까지 힘차게 유지해 나갔다. 다른 한 명은 산 속에서 평생 교회사 자료를 정리하며 연구했다. 그때의 젊은 교수 조광은 학계와 교계를 연결하고 연구자 발굴을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 이전부터 교회사 연구가 중요하다고 느꼈던 사람들이 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최정복, 장면 등과 사학계에서 연구를 하던 유홍렬, 이원순 등도 교회사의 중요성을 간파한 초기 멤버들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윤광선은 자기집 대문에다 ‘영남교회사연구소’라는 간판을 걸기까지 했다. 그밖에도 김구정, 마백락, 오기선, 변기영, 김옥희 등 여러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이 교회사에 목이 말라 스스로 우물을 파고자 했다.
닦을수록 빛나는 진주
빛나는 과거에 대한 기록은 이미 교회가 시작되면서 작성됐다. 황사영의 백서, 이순이의 편지, 다블뤼 문서 등이 그 예이다. 선교사들이 매년 본국으로 띄웠던 서한도 한국 신자들의 믿음살이를 정리한 기록이었다. 김대건 신부, 최양업 신부도 해외에서 조선입국을 애타게 기다리며 신앙인들의 순교 사실을 번역했다. 달레 신부, 르네, 삐숑 신부 등도 이 진주에 매혹된 사람들이었다.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사의 시작부분은 파내면 파낼수록 아름다운 진주로 드러난다. 새로운 소망을 품었던 조선인들과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땅을 밟았던 선교사들은 그들 스스로 하느님 사랑을 실증하는 작품이 됐다. 그들이 이루어낸 떨림은 세계 어느 교회라도 덥힐 힘이 됐다. 한국교회사 연구는 이러한 보물을 캐고 실어나르는 작업이다. 게다가 한국교회는 전혀 다른 가톨릭 문화가 유교사회에 뿌린 내린 교회이다. 또한 그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빨라 본인이 익힌 기도문이나 전례용어들이 살아 생전에도 몇 번씩 바뀌는 교회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사를 아는 일은 서로간의 소통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교회사 연구, 봉사직인가?
역사연구는 과거에서 현재에 걸친 모든 사건들의 관계를 밝히고 자리매김하는 작업이다. 이는 자신을 비우고 찾아내는 지엄한 판단이며, 오늘의 사람들에게 재체험을 촉구하는 전문 학문분야이다. 그리고 이 전문분야를 위해서는 치열한 수련과정을 거치면서 방법론과 그 철학을 익혀가야 한다. 이처럼 교회사 연구가 많은 일을 해내는 전문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그 연구 환경은 열악했다. 이제는 젊은 연구자들이 교회사연구를 필생의 업으로 결단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아울러 한국교회사 연구도 한 단계 도약해야 한다. 즉 교회사는 사회를 품는 해석을 해내야 한다. 교회사는 민족사의 큰 줄기 안에 함께 흘러가는 흐름이다. 열 명중 아홉 명이 비신자인 나라에서 아홉 명이 이해 못하는 교회만의 역사 서술은 극복되어야 한다. 미래신자를 포함한 인류 전체를 끌어안고 해석해 내어야 한다. 이야말로 사회 복음화의 지름길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현재는 전체를 꿰뚫은 현재여야 한다. 오늘의 우리는 이 교회사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그 연구자들을 좀더 아껴주어야 할 것이다.
김정숙 교수는 1985년 프랑스 국립사회과학대학원(EHESS)에서 역사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87년부터 영남대학교 문과대학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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