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 선수와 경주마의 눈가리개
며칠 전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개최된 2013 농아인올림픽이 폐막되었다. 한국은 금 19, 은 11, 동 12개로 농아인올림픽 사상 최다 메달을 획득하며 종합 3위를 달성하였다. 그 중 최수근 선수는 사격 세 부문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었다. 그 선수의 사격 모습을 보며 경기장을 질주하는 경주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플라톤이라는 경주마가 퇴역하고는 드라마에 출연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TV의 장면과 오버랩되었던 것이다. 집중력이 필요한 사격선수가 옆 선수에게 방해받지 않고 과녁을 더욱 또렷이 보기 위해 사용하는 아이 릴리퍼(eye reliefer) 또는 아이 쉐이드(eye shade)라 불리는 눈가리개, 그리고 주변사물에 잘 놀라는 경주마로 하여금 앞만 볼 수 있게 하여 경기에 몰입하게 하는 눈가리개가 공통분모였다. 한 곳만을 응시하게 하여 목표를 이루는 유용한 장치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한편, 7월 30일자 신문과 방송에서는 ‘수능 D-100일’이라는 제하의 뉴스가 일제히 보도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 진학이야말로 청소년들의 최고 목표이자 부모들의 최대 관심사이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날을 위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을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니 말이다. 바로 그날 여성가족부는 ‘수능100일주’ 마시는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홍보 캠페인을 펼치고 있었다. 대입수험생들이 시험에 대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그날 음주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여성가족부가 내건 ‘술 대신 꿈을! 담배 대신 희망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네 청소년은 행복한가?
그런 일련의 움직임을 보며 오늘 우리의 청소년들은 어떤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 되돌아보았다. 학교에 다니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공부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주저하지 않고 대학 진학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시험 성적에 따라 행불행이 좌우되고, 진학할 학교와 학과가 결정되니 마땅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청소년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가족이나 인생선배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청소년 각자의 적성과 의향은 뒷전이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성적을 올려서 진학할 학교와 학과를 상향조정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청소년 개인이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관심 밖이다. 눈가리개를 씌워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게 하고, 오로지 앞만 보고 내달리도록 채찍질하고 박차를 가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다. 취업이 잘되고, 고액의 연봉이 보장되는 소위 상위권 대학의 좋은 학과 진학이라는 기성세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청소년들에게 눈가리개를 씌운 셈이다.
문제는 눈가리개를 쓰고 전력질주하는 청소년들의 목표가 누구의 행복을 위한 것인가 하는 데에 있다. 사격선수는 자신이 마음속에 품은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눈가리개를 한 반면, 경주마는 기수와 마주와 관중의 꿈과 희망을 위해 강제로 눈가리개를 하고 있다는 점이 상이하다. 눈가리개를 쓴 겉모습은 동일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자율과 타율의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지금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자유의지에 대한 존중이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철없는 청소년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일은 무모하고도 무책임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숙하고 어리게만 보이는 청소년들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 있다.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꿈과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강요된, 눈가리개를 쓴 채로 바라보는 목표가 그들의 진정한 꿈과 희망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존엄성을 지니고 태어난 청소년들이 어떤 꿈을 꾸도록 할 것인지, 무엇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대학진학과 고액연봉만이 삶의 궁극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책임있는 존재로 인정받을 타고난 권리를 지니고 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러한 권리를 존중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자유를 행사할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분리될 수 없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73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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