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의 괴로움과 아픔을 우리는 ‘고통’이라 부른다. 육신에 고통이 엄습할 때는 주로 진통제를 찾고, 마음에 고통이 들어설 때는 평화를 찾는다.
국토종주를 위해 33일간 도보로 순례한 신인철씨는 다리에 전해지는 고통보다 마음의 고통이 견디기 힘들어 길을 나섰다. 십자가의 고통을 외면해왔던 마음의 고통이었다.
그러고 보면 육체보다 마음의 통증이 내뿜는 아픔은 상상초월이다. 누군가로 인해 마음을 다쳤거나 양심의 죄를 지었을 때, 마음은 곧바로 상처의 입을 벌리며 성을 낸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때로는 마음을 저릿저릿하게 하거나 쓰리게도 하고 피를 철철 흘리게도 한다. 아프고 싶지 않아 몸부림치고 뒹굴어도 시간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간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있다.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에 희망이 있었듯, 고통의 끝자락에는 지혜가 있다는 사실이다. 고통의 시기가 지나가면 상처는 어느 정도 입을 다물고 예쁘지 않은 흉터를 가지고 사람을 성장시킨다. 지혜라는 것이 참으로 우습다. 공평하게도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총명과 영리함과는 다르다. 삶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야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지혜다.
그래서 지혜서 6장 14절은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라고 했나보다.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는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통이 없으면 문간 앞의 지혜도 보지 못한다.
9월, 다시금 순교자성월이다. ‘고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순교자들의 시간이다.
주님을 배반한다는 마음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육신의 고통을 달게 받았던 그들에게 우리는 지혜를 배운다. 겪어보지 않고도 배울 수 있어 좋다. 순교신심, 실로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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