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가 7일 시리아의 평화를 위해 전 세계 금식 및 기도의 날을 선언하고,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수만명의 순례자들이 모인 가운데 기도회를 마련했다. 교황의 호소에 시리아의 이슬람 지도자들이 다마스커스의 사원에서 기도회를 열었고, 동방교회의 콘스탄티노플 바르톨로뮤 총대주교 역시 이를 지지하고 평화를 향한 염원을 다같이 다짐할 것을 청했다.
교황은 이날 기도회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미국의 시리아 공습 주장의 동기가 과연 평화를 향한 참된 인도주의적인 염원인지, 아니면 무기를 팔기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교황의 이같은 발언은 엄연한 한 정치 공동체의 수장이자,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영적인 아버지로서의 자리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파격적인 발언이기도 하다.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소박한 차림과 언행, 여기에 거침없는 행보로 세간의 화제가 되어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부패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교황청과 가톨릭 교회의 부끄러운 부분들에 대한 쇄신을 이끌 것으로 기대돼 왔다. 여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교황들처럼 국제 정치 무대에서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세계 평화 건설이라는 중요한 책무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다.
교황이 세속의 세계 안에서, 그것도 인도주의보다는 국가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냉혹하고 냉정한 국제 정치 무대에서 평화와 인간애의 회복과 구축이라는 보편적 소명을 완수해야 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사실 교황이 전쟁을 반대하고, 폭력을 결단코 있어서는 안되는 악으로 배척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불과 수백년 전만 해도 교황들은 이른바 ‘정의로운 전쟁’을 지지했고, 직접 이를 촉구하고 지휘하기도 했다. 역사책에서 흔히 그리스도교 교회의 큰 역사적 악행의 측면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십자군 전쟁이 그 하나의 예이다. 바티칸을 상징하는 멋진 풍경 중 일부를 이루는 스위스 근위병은 교황이 거느린 군대였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완전 무장을 하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통치자들에 대항해 전투에 나서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 교황들은 국제적인 분쟁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전쟁보다는 대화와 협상을 강조했고, 결단코 무죄한 이들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폭력은 용납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식을 위해 노력했던 베네딕토 15세, 제2차 대전을 막기 위해 외교적 채널을 가동했던 교황 비오 12세가 그 예이다.
이처럼 어떤 경우에도 전쟁이 불가함을 받아들이게 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엄청난 파괴력과 살상력을 가진 대량 살상 무기의 등장이다. 이른바 ‘정의로운 전쟁’이란 무차별적으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의 사용을 통해서는 어떤 경우든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전쟁은 피해야만 하는 절대악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교회가 어떠한 국제 분쟁에서도 중립을 유지하고 평화를 촉구할 수 있는 도덕적 힘을 보유하게 된 계기는 교황의 영토, 교황의 정치 권력이 미치는 교황 국가를 잃었던 것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어떤 국제 분쟁의 당사자도 될 필요가 없어짐으로써 바티칸과 교황은 어떤 분쟁에서도 평화를 사심없이, 이해관계 없이 촉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시리아 내전의 양 당사자들은 정치 권력의 이해관계 속에 놓여 있고, 시리아 공습의 필연성을 강변하는 미국도, 교황의 의심대로, 무기 판매상으로서의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듯하다. 가진 것이 없어야, 갖고 있는 것을 모두 털어내야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 대목이다. 교회가 아직도 뭔가를,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에 따르는 겸손함 외에 다른 무언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을 털어내야 평화를 주장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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