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취업률
지난달에 제21차 아시아가톨릭대학연합회(ASEACCU) 국제회의가 가톨릭대학교에서 열렸다. 신앙의 해를 맞아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가톨릭 고등교육의 사명’이라는 주제 하에서 가톨릭계 대학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는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직결된다. 「대학」의 첫 구절은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힘에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름에 있다.’고 시작한다. 태어날 때 하늘이 부여한 인의예지의 본성을 밝힘으로써 세상을 교화하여 선함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그 옛날 태학에서 가르치던 덕목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학문의 목적을 정신수양에 두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하여 상품생산이 이루어지고, 노동력이 상품화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학문의 목적을 본성회복과 같은 정신수양에 국한시킬 수는 없다. 맹자가 어짊과 의로움보다 이득을 앞세운 양나라 혜왕을 호통친 것이 더 이상 유효한 정치논리가 되지 못한다. 1957년 10월 옛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프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린 사건으로 인해 학문과 교육은 실용주의로 급선회하였다. 미국은 수학과 과학을 중심으로 한 교육개혁에 착수하면서 현실적으로 유용한 분야에 치중하게 되었다. 이를 수용한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재테크나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기초학문을 도외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의 대학평가에 있어 취업률이 핵심 잣대가 된 현시점에서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늘어만 가는 청년실업률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낮은 취득학점을 포기하고 재수강하는 한편, 토익·어학연수·자격증취득 등 스펙을 쌓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취업에 직접 보탬이 되지 않는 인문학 서적은 읽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당장 코앞만 내려다보며 뿌연 안개 속을 내딛기에 마음만 초조하고 바쁘다. 취업에 발목이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위로 뻗어나가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취업지상주의 내지 취업만능주의, 더 나아가 취업유일주의라 칭할만한 풍토가 만들어낸 풍속도이다.
문제는 청년들의 안쓰러운 몸짓에도 불구하고 실업자는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 달 고용노동부가 국회 예산결산특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청년실업자는 31만3000명이었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 일을 못하거나 아예 구직을 포기한 사람까지 포함한 체감실업자는 44만2000명에 달하였다. 급기야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통한 포용적 성장’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강하고, 지속가능하며, 균형있는 성장을 위해서는 높은 실업률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낮은 취업률 뒤에 감추어진 신입사원의 조기퇴사율은 더욱 심각하다. 취업에 성공한 10명 중의 3명이 바늘구멍과 같은 입사경쟁을 통과하고는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꿈과 희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불과 1년이 안 걸렸던 것이다. 취업으로 인해 근시안적인 시각을 가진 청년들이 인생의 크고 중요한 것을 놓친 나머지 꿈과 희망이 왜곡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작년에 기업체의 인사담당자 250명에게 설문한 결과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기업체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고려하는 우선순위는 직무역량(48.4%), 인성과 도덕성(39.2%), 전공(30%), 조직융화력(28%), 잠재능력(12%), 출신학교(9.6%), 성적(8.8%), 외국어 구사능력(8%)이었다. 또한 기업체에서 대학에 요망하는 교육 우선순위는 인성교육(34.4%), 현장실습교육(24%), 외국어 구사능력(11.6%), 전공교육(11.2%), 의사표현능력(9.2%), 리더십(6%)이었다. 기업체는 예상과 달리 청년들의 인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이 외면의 배경과 겉치레보다 내면의 본성과 성품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
대학은 연구·교육·봉사가 아우러진, 또한 지·덕·체가 겸비된 전인교육의 장이다. 학문과 교육이 실용적 지식인을 넘어 인성을 지닌 지성인을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당위성이 거기에 있다. 청년들은 그간 갈고 닦아온 배움을 자신과 가족만이 아니라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쓰고자 하는 큰 마음을 지녀야 한다. 또한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궁극적 지향점을 찾고자 하는 넓은 안목을 지녀야 한다. 「명심보감」 근학편의 한 대목이 새롭다.
‘배워서 지혜가 원대해지면 구름을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는 것과 같으며, 높은 산에 올라 온 천하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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