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박7일간의 여정.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페르난도 필로니 추기경은 공식적인 행사 참가 외에도 쉴틈없이 한국교회 신자들, 주교, 사제, 수도자들과 각각 만남을 가졌다. 특히 각계 만남 중 필로니 추기경은 미리 준비한 공식 연설 뿐 아니라 즉석에서 질의응답을 갖고, 한국교회의 복음화 비전과 소명을 함께 나눴다.
또한 필로니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와 수원교구 관할 성지와 유적지 곳곳을 방문하며 한국 순교성인들과 신앙선조들에게 공경을 표하고, 한국교회사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도 했다.
신자들은 사회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소금’
◎… 한국 신자들은 한국을 처음 방문한 필로니 추기경을 따뜻한 환대와 사랑으로 맞이했다. 신자들과 필로니 추기경과의 만남은 5일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와 꾸르실료 회관 등지에서 이뤄졌다.
필로니 추기경은 한국 신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밀가루(인간)와 누룩(복음)과 소금(증거)이 물(세례)과 결합할 때, 이 요소들이 좋은 빵으로 변형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신자들이 세상 곳곳에 향기를 전하도록 부름받은 이러한 소금”이라고 전했다.
한국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최홍준 회장도 이날 환영사를 통해 “저희들의 신앙생활을 돌아볼 때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의 괴리가 크게 대두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살고 사랑을 실천하는 노력이 시급함을 알고 있다”며 “교황님께서 ‘신앙의 빛’ 회칙을 통해 언급하신 대로 저희는 평화의 바탕이며 통로인 형제애의 참된 근원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다짐을 밝혔다.
주교들은 백성들 가운데 서 있어야
◎… 2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진행된 한국 주교단과 필로니 추기경과의 만남의 대표적인 화두는 인류복음화성의 큰 관심사인 중국 복음화를 위한 협력이었다.
필로니 추기경은 북한과의 교류 뿐 아니라 중국교회 성장과 복음화에 기울이는 한국교회의 관심과 지원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중국교회의 민감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인류복음화성과 한국교회가 보다 원활한 협력을 이뤄나가자”고 권고했다. 또한 “한국교회는 선교 역량 면에서나 지리적, 문화적 배경 등을 고려할 때 중국 복음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교회”라고 밝히며 한국교회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주교단 또한 중국 복음화를 위해 펼치고 있는 각 교구별 활동 등을 소개하고, 앞으로의 활동에도 적극 협력할 뜻을 표명했다.
아울러 필로니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 “주교가 백성들 가운데 설 자리는 앞에서 길을 가르쳐주고,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 서로간의 일치를 유지하며, 그들 뒤에서 아무도 뒤처지지 않게 보살펴주는 것”이라며, 특히 본당을 자주 방문해 평신도들에게 더욱 큰 관심을 기울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기도하는 사제와 수도자의 모습
◎… 사제들을 대표해 수원교구 사제단과 인류복음화성 장관과의 만남이 4일 수원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마련됐다.
사제들은 이날 필로니 추기경과의 대화에서 인류복음화성과 한국교회와의 관계를 비롯해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에서의 보다 구체적인 선교 비전 등에 대해 관심을 드러냈다.
또한 필로니 추기경은 사제들에게 “오늘날 신자들과 교회는 이 나라의 사제인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를 반문해보자고 권고했다. “우리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하느님의 말씀과 겸손, 온유함”이라고 강조한 필로니 추기경은 “사제가 허영의 길로 들어서면, 출세주의로 들어서게 되며 교회에 큰 해를 끼치고 결국 더 우스운 꼴이 되고 만다”고 당부했다.
이에 앞서 같은 날 수원교구 천진암성지에서 가진 한국 천주교 남·여 수도회 장상 및 수도자들과의 만남에서는 한국 수도자들의 생활은 세계적으로도 좋은 모범이 되고 있다고 격려했다. 특히 필로니 추기경은 “심각한 인력 부족의 어려움을 겪는 나라들을 돕고 지원하는 수도자들의 모습은, 과거 한국 선교를 훌륭하게 해낸 선조 선교사들을 닮는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밝혔다.
이어 필로니 추기경은 수도자들에게 “베네딕토 성인이 수도규칙에서 정한 대로 ‘기도하고 일하라’는 순서가 바뀌어선 안된다”고 강조하고 “최근 많은 수도 공동체에 번져가고 있는 위기는 실제적인 활동에 치우친 나머지 기도와 영적 삶의 중요성을 소홀히 하거나 도외시한 것에서 기인한다”고 조언했다.
삶에 대한 식별의 시간 위에 선 신학생들
◎… 필로니 추기경 방한 공식 일정은 5일 오후 정진석 추기경과의 환담에 이어, 가톨릭대 신학생들과의 만남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만남의 장에서 신학생들은 추기경에게 다시 신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 시절 추기경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등의 질문을 던졌다.
필로니 추기경은 신학생들의 적극적인 질문에 “나의 지난 사제로서의 삶은 하느님의 은혜와 나 자신의 비참함을 동시에 알게 해주는 시간이었다”고 입을 열었다. 또 “출애굽에서 이스라엘의 비참함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더욱 짙게 드러났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비참함에서부터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 것처럼 나 또한 비참함에서부터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내 삶은 하느님의 사랑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깊이 새기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추기경은 물신주의 등 세상 복음화의 걸림돌이 되는 사회문화적 흐름을 두고 고심하는 신학생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는 ‘역류’의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추기경은 “미와 자유, 불복종, 부유함, 무비판적인 과학기술의 발달 등을 추구하는 것이 현대사회의 주류적인 흐름”이라며“그 흐름에 역류해 하느님을 향한 가난과 정결, 순명의 삶을 사는 것이 또 하나의 역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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