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97년에 자유 대한민국으로 왔습니다. 한국에 와서 생활한지 몇 달 지난 어느 날 집 근처에서 할아버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격양되게 언성을 높여 이야기를 나누는지 싸우는 것으로 오해할 정도였습니다. 호기심에 다가가 듣는 순간 심장이 멎을 뻔 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이었습니다. IMF라는 국가위기가 초래되면서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국가 청문회에서 비판받을 때였습니다. 모여 있던 할아버지들이 대통령을 욕하고 있는데 그냥 비판이 아닌 입에 담지 못할 독설을 퍼붓고 있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충격을 가까스로 가다듬고 ‘이 반동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떨리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112에 신고를 했습니다.
잠시 후 저의 어처구니없는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관들은 저를 똘아이 취급했던 것이 더 가슴 아파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막무가내로 경찰관들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하자 경찰관님께서 제가 탈북자임을 아시고 웃으시며 던지신 한마디, 저는 평생 그 때 그 분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살아갑니다.
“강 선생님, 여기는 북한이 아닙니다. 여기는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강 선생님이나 대통령이나 똑같은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오늘 강 선생님이 대통령에게 대한 불만이 있으시면 청와대 앞에 가서 시위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이 당시 저에게는 너무도 충격적 이었습니다.
대통령과 내가 똑같은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니? 이 사람이 제정신인가? 혹시 이 사람도 반동아닌가?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당시로써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만일 북한 같으면 어떻게 일반 시민과 김정은이 똑같은 사람으로 인정받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제가 한국생활 초기에 겪어야만 했던 에피소드입니다.
오늘날 생각해 보니 전혀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그 때를 생각하면 오늘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태어난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사회에 와서 맨 처음 많은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남남갈등입니다. 한국사회는 물론 교회마저 보수와 진보라는 그룹으로 나뉘어 서로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갈등으로 갈라져 있는 모습은 남북통일을 무색하게 할 만큼 북한이탈주민들의 걱정거리입니다. 대부분 북한이탈주민들이 보수에 가깝다고 많은 분들이 생각하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의 극단적 행동과 주장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진보주의자들은 맹목적인 친북을 주장하며 진정한 우리의 형제요, 이웃인 북한 주민들보다 김정일 정권에 치우쳐 있는 모습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분노라는 내적인 울분을 주기도 합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수적 교회는 북한이탈주민을 앞세워 투쟁의 목소리로 정부를 압박하고 진보적 교회는 대가없이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로 흥분시키기도 합니다.
모세는 자기민족을 노예에서 해방 시키라는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때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우리 신앙인들은 박해 받는 북한의 주민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한 그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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