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성 좋은 친구 녀석이 있다. 유난히 냉면을 좋아했던 녀석과 함께 밥을 먹는 날은 꼭 나까지 과식을 하게 되는데, 문제는 옆에서 보는 사람이 걱정될 정도로 너무 과식을 한다. 한번은 중국으로 여행을 갔는데, 유명한 냉면집이 있었다. 맛도 좋았지만 특히 양이 푸짐했다. 거침없는 식탐에 유별난 냉면 사랑을 보여온 친구 녀석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1인분 3배 분량의 두 그릇을 해치운 녀석, 사실은 냉면집에 오기 바로 전에 길거리에서 불량식품을 잔뜩 섭취한 이후였다. ‘꺼억!’ 하고 트름을 한 녀석이 이미 젓가락으로 이 사이를 쑤신 다음인데도, 입을 우물우물 소 되새김질하듯 한다. “이 자식이 또…”
채 5초도 되지 않아 녀석은 배를 출렁거리며 식탁 사이를 쓰러지듯 미끄러져 화장실로 향했다. 예상은 했지만, 나까지 속이 메스꺼워 고개를 외면했다. 이어 사람들 사이로 들려오는 ‘철퍼덕’, ‘푸하’. “아, 더러워.” 어기적거리며 화장실을 나온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치면서 하는 말, “너! 그럴 줄 알았어!”
평소 하는 짓을 보면, 결말이 예상된다. 이렇게 속 거북한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친구는 지하철역에서 만나는, 불쌍해보이는 사람들에게 한 없이 친절하고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른 다음이긴 하지만. 마음 씀씀이는 취하기 전이나 후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친구는 한겨울에도 목도리, 장갑, 외투에 심지어 양말까지 벗어주곤 했다. 우리는 또 걱정을 한다. 한 걱정은 집에 가면 어머니께 야단을 맞을 것이라는 점, 다른 하나는 추운 겨울에 다 벗어주고 셔츠 하나만 입고 달달 떨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마다 꼭 두어 번씩은 큰 열감기를 치른다. 며칠 안보이면 영락없이 전날 술 먹고 서울역쯤에서 옷을 벗어주고 찬바람에 감기를 얻어 앓아 누웠음을 짐작케 한다. 그래서 우리는 또 녀석 이마를 툭 치며 사랑스럽게 말한다. “으이그, 너 그럴 줄 알았다.”
녀석이 평소 보여주던 연민과 애정은 그리 미련한 짓을 하더라도 이해가 됨직하다. 세상의 이치와 셈으로야 그게 어디 지혜로울까. 녀석의 어머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노심초사, 이제는 제 아내까지도 그 걱정에 동참시킨 듯하다.
이처럼 사람의 어떤 행동은 반드시 평소의 언행과 일상 삶에 관련이 깊다. 순교자의 성월을 벌써 지냈기에 때 늦긴 했지만, 여전히 되풀이되는 ‘순교자’는 대체 어떤 것일까 하는 의아함에 대한 묵상을 하게 된다. 순교자성월에 즈음해 마련됐던,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한국 순교자의 삶과 신앙’을 주제로 마련한 심포지엄은 그 대답의 방법론을 제시했다.
순교자의 ‘죽음’과 ‘고통’에만 집중하지 말고, 오히려 순교하기까지 그 삶과 신앙을 탐구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고유한 순교 영성의 실마리를 찾는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조언은 이 심포지엄이 주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죽음을 불사한 영웅적인 덕행은 자칫 나와는 무관한 초인적 신앙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거기까지 이르게 된 동안의, 자신을 덕성으로 채워 나가는 수계(守誡)의 삶의 여정에 대한 탐구가 오히려 더 효과적인 교훈이 될 것 같다.
식탐이 과식과 ‘반납’에 이르듯, 연민과 동정이 감기 몸살로 이어지듯, 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한 평소의 사랑과 그 실천은, 신앙을 위해 당대가 요구한 ‘순교’로 이어지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순교’의 의미를 ‘내던진 목숨’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삶과 신앙을 들여다봄으로써 더 용이하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은 신선하다. 특히 그것이 지금까지 한국교회 안에서 다소간 소홀했었다는 점, 그리고 여전히 ‘순교영성’이라는 것이 오리무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 절실한 과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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