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북한이탈주민으로 이 땅에 들어온 지 18년, 되돌아 보니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가 오늘을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이름 때문에 지금도 ‘한국사람’들로부터 “왜 왔습니까?” “부모, 형제 버리고 어떻게 혼자만 올 수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결코 곱지만은 않은 시선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삶에서 겪게 되는 아픔들이 신앙이 아니고서는 견디기 힘든 일들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하느님을 만나 꿈과 희망을 안고 대한민국으로 왔지만 자본주의라는 냉철한 사회현실 앞에 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은 방황하게 됩니다. 한국 정착초기 저의 삶 또한 여느 북한이탈주민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정착이라는 힘든 삶에서 허덕이고 있었던 1998년 어느 날 아는 분의 소개로 과천 은파선교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삶의 여건이었기에 솔직히 신앙보다 먼저 도움을 바라는 욕심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습니다. 그때 담임목사님이신 김광덕 목사님(원로목사)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과의 인연이 어떻게 보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순수한 믿음의 동기보다 도움을 바라는 욕심이 마음속에 숨겨져 있었지만 목사님은 친자식같이 저를 품어 주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당시 북한이탈주민인 저에게는 삶의 현실이 슬픔과 좌절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삶의 의욕마저 빼앗아 갈 정도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인생의 방황기에 목사님을 만나게 됐고, 그때 목사님께서 제게 삶의 의미와 신앙의 동기, 목회자로서의 준비를 시켜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너희를 이 땅으로 보내 주신 것은 분명한 계획이 있다. 통일 후 너희들이 고향에 가서 고향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해야 하기에 그 사명을 감당하라고 이 땅으로 보내주신 하느님의 일꾼들이다.”
당시 목사님의 이 말씀이 저를 소중하게 여기게 한 깨우침이었고 하느님의 사명을 알게 한 계기였습니다. 그리하여 목사님의 소개로 감리교 신학대학교에 입학하게 됐고 지금은 감리교 신학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감리교 서울남연회 양천 지역에 북한이탈민들을 위한 새터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하게 됐습니다.
2004년 12월, 양천 지역에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한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솔직히 고민이 많았습니다. ‘과연 우리교회에 나를 믿고 찾아올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어차피 남한 사람들은 오지 않을 것이고….’ 라는 고민을 수없이 하게 됐습니다. 이런 저런 고민 끝에 사명감 하나로 새터교회를 개척하게 됐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지 8년, 현재까지 120명의 신자를 전교하는 기적을 낳았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며 기적적으로 새터교회를 세워왔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기적은 저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주변에서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신 목사님들과 한국교회 신자들의 기도의 덕분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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