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성월이다. 교회는 11월을 위령성월로 정하고 특별히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언젠가 우리에게 닥쳐올 죽음을 묵상토록 하고 있다.
인간은 죽음을 향하고 있는 존재이면서도, 한편 죽음을 기피하고 멀리한다. 전문가들에 따를 때 그 배경은 현세의 집착된 삶으로 인해 죽음을 현세적 삶의 종말로 생각하거나 또 종교적 문화적 영향에 의해 죽음을 죄악의 결과와 연관시키는데 있다. 아울러 심리적 이유에서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등으로 죽음을 기피하려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렇게 보통의 사람들에게 죽음은 두려움이요, 불안이요, 공포이지만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는 죽음은 지상을 마치는 순례의 끝이며 희망과 구원, 즉 영원한 삶으로 나가는 관문이다. 희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희망의 한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위령성월은 ‘죽음’의 의미를 묵상하며 지상에서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영원으로 이어짐을 깨닫고 아울러 하느님 사랑의 계명을 다시한번 되새기는 은혜로운 시기이다.
위령성월이 더욱 의미를 지니는 것은 위령기도를 통해 연옥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하느님 나라에 이미 들어가 있는 성인들도 세상의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는, 산 이와 죽은 이의 통교를 체험할 수 있는 시기라는 면에서다.
위령성월을 맞으며 우리는 이러한 성월의 의의 속에서 현세의 삶을 살고있는 자신을 또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삶의 충실성 속에서 희망과 사랑, 믿음 없이는 죽음이 갖는 올바른 신앙적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신학자의 말대로, 그러기 위해서는 순간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결단의 생활이 요구된다 할 수 있다. 그런 삶의 태도만이 죽음의 의미를 수용하고 적극적 자세에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대한 올바른 자세는 곧 올바른 삶의 자세’라는 말이 더욱 절실하게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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