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고민이 있었다. 속으로만 끙끙 앓았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결국 좌절한 내게 한 친구가 다가와 이유도 물어보지 않고 가만히 함께 해줬다. 그리고 따뜻한 손으로 차가운 내 손을 꼭 잡아줬다. 그 때 그 일이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모른다. 이후에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 친구의 손에서 전해진 온기를 떠올리며 힘을 내곤 했다.
10월 23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마련한 정기세미나는 한국사회의 노동자들에게 친구의 온기 같은 자리였다. 일명 ‘갑’의 횡포는 극심해지고,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의지할 곳을 잃고 있다. “소외된 노동자들의 눈물은 교회가 세상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써 제 몫을 다했는지 성찰하도록 만든다”며, 노동자들의 눈물에 주목한 이용훈 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의 한 마디는 외롭게 세상과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든든한 ‘빽’이 돼준다.
사실 교회는 오래 전부터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보여 왔다.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가톨릭교회 최초의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부제: 노동조건에 관하여)를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사회교리들이 노동자들의 처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도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40여 년 동안 노동자들과 함께한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와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노동자주일’을 제정한 인천교구는 물론 거리에서 노동자 곁을 지키는 수많은 사제들에게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번 주교회의 정평위 세미나에서 이동화 신부가 언급한 것처럼 주교회의와 각 교구에 ‘노동사목위원회‘가 설립된다면 노동자들에게 이 보다 더 반가운 소식은 없을 것이다. 이제 교회가 노동자와 함께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체계적인 사목 시스템을 갖추고, 현실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노동자의 든든하고 포근한 동반자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더불어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하루 빨리 노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교회 내에 자리 잡게 되길 바란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