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은 최근 전 세계 각 교구와 본당을 대상으로 가정에 대한 교회 가르침의 수용 여부를 포함해 피임, 동성애, 이혼 등 가정 관련 이슈들에 대한 ‘풀뿌리’ 설문조사를 실시할 것을 각국 주교회의에 요청했다고 미국의 가톨릭 온라인 신문인 가톨릭리포터(NCR)가 최근 전했다.
언론들은 이 외신기사를 받아 쓰면서 ‘가족’, 성과 생명윤리에 관해서 극도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가톨릭교회가 획기적인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는 않는가 추측하고 있다. 즉, 교회가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데, 사람들이 가정과 윤리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얼마나 안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 피임, 인공수정, 동성애 등에 대한 입장에 변화가 생기지 않겠는가 하는 은근한 기대를 한다.
국내 언론이 인용한 이 보도에 나온 내용은 미국 주교회의가 받은, 교황청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총장 로렌조 발디세리 대주교 명의의 서한과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총회 예비문서 ‘가정 사목과 복음화’를 두고 이른 것이다. 물론 한국주교회의 역시 이 공문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주교회의 사이트에는 이미 서한 외에 본문격인 번역문이 올라와 있다.
이 문건, 즉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총회 예비문서 ‘가정 사목과 복음화’라는 문건은 내년에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가정 사목을 주제로 열릴 것이며, 그 준비를 위한 ‘의제 개요’ 작성에 참고하기 위해서 각 지역교회를 대상으로 현대의 가정 문제에 대한 다각적인 설문을 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교황청은 내년의 주교대의원회의 임시총회가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관찰의 단계에 해당될 것이라고 말한다. 즉, 문건에 따르면 내년 총회는 ‘문제의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주교들의 경험과 의견을 모으기 위한 자리이다. 이를 바탕으로 2015년에 열리는 정기총회에 가서야 비로소 “개인과 가정의 사목을 위한 실질적인 지침을 마련할 것”이다. 따라서, 이른바 ‘풀뿌리’ 설문조사는 내년 임시총회의 주요 목적인 현실의 정확하고 구체적인 파악을 위한 첫 번째 조치라는 생각이 든다.
섣부른 추정은 금물이지만, 교황청이 각 지역교회에 보낸 문건에서 실제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권고한 것은 의미가 있다. 예비문서 자체에 설문 조사를 실시하라는 권고는 없다. 그러한 권고가 나타난 것은 교황청 주교대의원회의 사무국 사무총장 로렌조 발디세리 대주교의 서한이다. 발디세리 대주교는 미국 주교회의에 보낸 서한에서 각 교구에 이 문건을 배포하고, 사목자와 본당에 최대한 광범위하게, 즉시 나눠주고 응답을 받아서 알려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주교대의원회의를 준비하면서, 주교회의 단위의 응답을 요청하는 것은 통상적이지만, 이처럼 각 본당과 사목자들로부터의 구체적인 응답을 요청한 것은 이례적이다.
만약, 교황청이, 그리고 각 지역교회가 냉정하고 엄정하게 이 조사를 실시한다면, 세속은 물론이고 교회 안에서조차 얼마나 광범위하게 교회 가르침의 수용을 거부하고 있는지 그 현실을 아주 따갑게 느끼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 안에서도 이미 몇 건의 조사를 통해서 가톨릭 신자들이 가정과 생명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거의 따르지 않고 있음을 충격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
종종 교회의 가르침이 선언적으로 되풀이될 뿐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교회의 선언이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효과나 영향을 사회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어쩌면 전세계적으로 실시될 이 조사를 통해 가톨릭교회는 좀더 명확한 현실 인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교회가 세류에 편승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세상의 흐름이 얼마나 교회의 인식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과학적이고 경험적으로, 통계적으로 확인은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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