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황청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사무국의 요청에 따라 한국교회에서도 각 교구 실정에 따라 한국 신자들의 가정 생활 실태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교황청이 내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임시총회의 주제를 ‘가정’으로 결정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그 준비를 위해서 전세계에서 실태조사를 해줄 것을 요청한 것은 더욱 적절한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사회와 세계, 그리고 가톨릭교회가 현재 가장 큰 괴리를 보이고 있는 영역이 바로 이 부분이다. 피임, 낙태, 성 윤리 등 가정과 생명윤리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 세속사회에서 과연 얼마나 수용되고 실천되고 있는지 교회는 큰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적지 않은 신자들이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이들은 그 괴리가 걸림돌이 되어 교회를 떠나는 사례도 없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가정과 생명윤리에 관해서, 이러한 현실이 교회의 가르침에 변화를 줄 이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 하느님의 법이 변화되는 사회와 교회 현실에 따라서 좌지우지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객관적인, 때로는 통계적인 사실이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무엇보다도 사목적 배려의 대상인 사람들과 사회의 정확한 실태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현실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자세를 필요로 할 것이다. 교황청의 이번 설문조사 요청 역시 현실과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긴급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몇 차례의 조사에서 신자들 역시 충격적일 정도로 교회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처럼 충격적인 실태가 가정 사목의 정책을 수립하는데 얼마나 겸허하게 반영됐는지는 숙고해볼 일이다. 선언적 가르침만으로는 세속화된 현대인들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회가 가정 사목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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