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문외한이라고 할지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지휘자가 되어보는 꿈을 꾸어보았을 것이다.
눈을 감고 팔을 멋들어지게 흔들어주면 그에 화답하여 멋진 음악이 흘러나오는 꿈.
나도 어려서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고 싶었었다. 헤드폰을 쓰고 거울 앞에서 격정어린 몸짓으로 백번도 넘게 나만의 연주회를 열어왔던 덕분에 베토벤 9번 교향곡 4악장은 당장이라도 지휘할 수 있을 지경이다.
내가 꿈꿔온 대로 나는 지휘자다. 가끔은 카라얀도 울고 갈만큼 우아한 동작으로 팔을 들어 선율의 흐름을 그려보고 감미로운 화음을 표정으로 나타내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하릴없이 들어 올린 손을 멋쩍게 끌어 내린다.
우리 합창단은 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휘하는 에파타합창단은 시각장애인 합창단이다. 단원 중 두 명만이 나의 형체를 희미하게나마 가늠할 수 있는 약시(弱視)일뿐 대부분은 낮밤조차 시력으로는 알 수없는 전맹(全盲)이다.
지난 주 연습에서는 백번도 넘게 알려준 부분을 맘에 들지 않게 노래 부른다고 버럭 화를 내며 “눈 좀 떠서 나 좀 볼 수 없겠느냐?”고 소리 질렀다. 힘들여 연습할 필요 없이 지휘만 보면 해결되는 간단한 부분이라 그랬지만, 그렇다 해도 뜨란다고 떠지는 눈도 아닌데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아 후회됐다. 그러나 그들은 빙글빙글 웃으며 “다 보여요.” 한다. 겸연쩍어 “보이긴 뭐가 보여요? 쳇!” 하며 오히려 신경질로 그 순간을 넘어갔지만, 정말 감은 눈들로 날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착각 들 때가 참 많다. 이들은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한다. 이만큼 사랑한다면 보일만도 하겠단 생각이 든다.
내 귀에는 주님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또 눈을 들어 그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지…. 이들에게 소리 지를 일이 아니다. 아이고, 인곤 요셉아! 너부터 눈 좀 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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