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우리 합창단이 일산 탄현동성당으로부터 새 성전 봉헌 기념음악회를 제안 받았을 땐 기뻐서 뛸 듯하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10월로 예정된 음악회가 다가올수록 걱정만 쌓여갔다.
연주회 당일 두 시간 허락된 리허설에 단원들이 한 시간이나 늦은데다가, 좁은 연습실에 익숙해있던 우리는 넓은 성당의 울림에 당황해 조금 남은 시간마저 헛되이 끝내고 말았다. 속이 다 타들어가 한숨을 내쉬고 있는 동안에도 저녁을 맛있게 먹고 있는 단원들이 그리 미울 수가 없었다. 도망갈 방법을 찾지 못해 무대에 올라가긴 했는데 무대에서 이리 막막하고 떨려보긴 처음이었다. 완전히 칼날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평소처럼 안정을 찾고 천연덕스럽게 노래를 불러댄다. 1부가 끝난 후 이럴 거면서 아까는 왜 그랬냐며 툴툴대는 나를 향해, “잘될 거라고 했잖아요. 너무 안달 말아요” 한다. 어쨌든 연주를 잘 마칠 수 있었고 진심어린 박수를 가슴 먹먹해지도록 받았다.
나는 내 눈에 의지해 발을 딛지만 눈 없는 우리 단원들은 마음에 의지해 발을 딛는다. 실상 눈으로 보는 길은 대부분 길이 아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못하게 우리를 붙들어 쳇바퀴 돌게 하면서도 길을 걷게 한다고 스스로를 속이게 하는 가짜다. 진짜 길 대부분은 보이지 않아서 칼날 위를 걷듯 위태롭고 두렵기 마련이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시편 23, 4)
나도 눈을 거두고 믿음으로 길을 걸을 순 없을까. 아브라함이 요나가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걸어간 길을, 심지어 예수님조차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했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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