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시간으로 12월은 한 해의 끝자락이다. 그 끝자락에서 교회는 새로운 시간의 의미를 찾는다. 교회의 시간은 ‘사람이 되시어 우리의 삶 한 가운데 오시는 하느님’을 기다리며 깨어있는 시간으로부터(대림 시기)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구중궁궐과도 같은 세계에서 그저 독야청청한 존재로만 머무르시지 않고 삶의 온갖 희로애락이 펼쳐져있는 인간세계와 역사 속으로 깊이 들어오셨다. 몸소 고단한 세상 속 나그네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신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초월적 존재라 일컫는 까닭은 근본적으로 바로 그 때문이다. 인간의 생각과 손이 닿지 않은 저 너머의 존재요 세상의 저편에 존재한다는 뜻의 하느님의 초월성이라는 것도 하느님 스스로 자신만의 견고한 세계를 깨뜨리고 경계를 허무셨다는 데서 비로소 그 의미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초월성이라는 것이 대체 오늘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스도인, 세상 속 나그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역시 세상 속 나그네라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하느님 나라의 행복(마태 5,3-12 참조)을 살아가신 나그네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 속 나그네로서 그리스도인 역시 세상사를 떠나 존재할 수도 살 수도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세상의 사회체제 및 법체계, 정치와 경제체제, 그리고 사상과 이념체계의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는 것도 틀림없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체제와 체계는 결코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따라서 더 나은 인간세상을 위해서 언제든지 자유로운 비판 앞에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관점(하느님 나라를 추구한다는 뜻에서)에서만이 아니라 세상의 관점(그 누구도 세상의 체제와 체계를 절대화할 수 없다는 뜻에서)에서도 그렇다.
세상의 관점에서도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도 세상 속 나그네는 세상의 모든 부조리한 현실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상적이고 전문적인 사고체계와 관념체계를 의문시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알며, 더 나아가 더 나은 인간 삶과 세상의 변화를 꾀할 줄도 아는 존재이다.
세상 속 나그네의 기도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들의 대선개입을 부당하게 여긴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마땅하게도 시국선언을 하고 시국미사를 드렸다. 교회 안팎에서 비판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시국선언 사제들에 대한 교회 내의 비판이 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인 듯하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과의 대화나 논쟁과 같은 것이 아닐까. 부질없는 교황청 고발 따위와 같은 차원에서 길을 찾는 것은 그리 성숙한 모습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침묵하는 다수의 신자들’을 생각하자는 것에 대해 한마디 덧붙인다면 어떤 신자들이 현실의 엄중한 사안에 대하여 침묵하는 것이야 자유겠지만 그들의 침묵을 곡해하는 해석은 뭔가 과도하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또한 교회 밖의 이런저런 전문가들이 나서서 사제들의 처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야 자유로운 민주사회에서 뭐라 할 것인가. 다만 그것이 종북몰이와 같은 맹목의 폭력이 아니라면. 그들이 도대체 천주교에 대한 어떤 식견을 지니고 사제들의 시국선언 행위를 나무라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으나 굳이 전문성 운운하며 그들의 비전문성을 탓할 정도로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더러는 교황님의 강론내용을 빌어 국정원 규탄 시국선언에 참여한 사제들에게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기도는 최고의 정치 개입’(송평인, “천주교 시국선언의 일탈”, 동아일보 2013.9.26)이니 기도하라고. ‘정치 개입이라는 것은 정치가들을 규탄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그들이 사악한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좋은 통치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라고. 이 충고는 분명히 들을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듯하다. 우리의 기도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가 세상 속 나그네의 기도를 증언할 때이다. 마치 예수의 기도가 인간의 심층을 건드리고, 세상의 허구를 드러내 보였던 들불의 기도(주님의 기도)로 세세대대로 활활 타올랐던 것처럼. 그렇게 세상 곳곳에서 타오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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