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알고 지내던 탈북자 한 분이 개인적 부탁을 해왔다. 누님이 재입북을 시도하다가 인천공항에서 관계기관에 체포되어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데, 재판부에 제출할 탄원서를 작성해달라는 것이었다. 대북라디오 종교방송을 함께 진행해오면서 이 분의 성실함과 인간됨에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던 터라 외면할 수 없었다. 며칠 전 신문기사에서 읽은 내용이었지만 탄원서 제출을 위해서 사실관계부터 확인해야 했다.
북한에서 주부였던 누님은 중국에 잠시 나왔다가 북한으로 돌아갈 경우 국가보위부가 자신을 체포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불가피하게 한국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북한의 남편과 자녀에게는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에 들어온 후 3개월 간 하나원 사회적응교육을 마치고 지방에 임대아파트를 받았지만, 북한에 두고 온 남편과 자녀에 대한 걱정, 그리움, 그리고 홀로 살기 위해 떠나왔다는 죄의식에 사회 적응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사실 최근 발생한 몇 건의 재입북 탈북자들의 사정을 직간접적으로 모두 알고 있었기에 이들의 사정을 헤아리고는 있었지만 남쪽에 남아 있는 가족에게서 직접 설명을 듣는 느낌은 달랐다
한국에 먼저 와있던 동생은 누님의 사회적응을 도우려 애를 썼지만 북쪽에 있는 남편과 자녀를 생각하는 누님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고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누님을 도우려 했지만, 누님은 가족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북한에 남아 있는 아이들과 남편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족’을 찾아 길을 떠난 것이다. 누님의 선택은 우리 법률을 위반한 것일 테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 가족을 두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남한에서 북쪽에 둔 가족을 그리워하며,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 북쪽 행을 선택한 것이 과연 당사자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인가?
사실관계는 관계기관에서 조사를 했을 것이고, 법률적 판단은 사법부에서 진행 중이니 그 결정을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탈북자 출신이든 아니든 남한 국민이 자의로 입북하는 것을 환영하거나 잘한 것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단민족의 구성원으로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혈육을 찾고, 함께 사는 삶을 위해서 ‘가족’을 찾아 나선 것은 천륜과 인륜에 해당하는 것이지 법률적 판단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누가 이 가족에게 이러한 아픔을 주었는가? 이 책임은 남북한에 나뉘어 살면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가족만의 몫인가? 과연 우리들의 책임은 없는 것인가? 우리 교회와 한국 정부와 사법부, 그리고 관계기관에 묻고 싶다. 과연 우리가 이 누님의 입장이라면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를 포함한 주변인들의 탄원서가 재판부와 수감자에게 전달된 모양이다. 그런데 누님의 반응은 “값 눅은 동정은 필요없다”였다고 한다. 한반도 분단의 아픔과 가족의 생이별의 고통을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담당하겠다는 전언이었다. 실은 누가 이 아픔을 제대로 알겠느냐? 너희들이 진정으로 이 아픔을 이해하고 탄원을 했느냐는 질책으로 들려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누님의 상처가 우리의 상처로 나누어지길 희망하며 그들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 기도한다. 한반도의 하나 됨을 함께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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