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합창단 단원들은 감정이 풍부하다. 드라마 보면서도 잘 울고, 노래 부르다가도 울고, 말하다가도 울컥한다. 그런데 유독 자신의 불행과 고난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그간 살아온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말문이 막힐 지경인데 어찌 이리 밝은 표정을 지닐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단련돼 단단해진 이 분들의 심성을 나는 곧잘 이용한다.
내가 이 합창단을 시작했을 때 정말 많은 꿈을 가졌었다. 금방 멋진 화음을 이루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후원자도 금방 만나서 세계 최초 최고의 시각장애인 직업합창단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다. 그러나 생각대로 되는 일은 단 하나도 없고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내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일취월장하리라고 착각했던 합창단의 실력은 나아지는 정도가 무척 더뎠고, 당연히 쏟아져 들어올 줄 알았던 주위의 성원은 너무나 요원했다.
하나의 목표가 좌절될 때마다 나는 습관처럼 “살면서 가시덤불 자갈밭길 아니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어요?”라고 하며 이들의 삶을 슬쩍 끌어들인다. 그럼 항상 그래왔듯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제 오늘 일도 아니지!’하며 순간의 실망 정도는 가볍게 이겨낸다.
비전을 제시해야 할 내가 가끔은 단원들에게 되묻는다. “언제쯤 이 덜컹거리는 험한 길이 끝날까요?” 그럼 기가 막히게도 “안 끝날 거예요”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십상이다. 이 분들, 정말 희망도 없이 묵묵히 나를 따르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은근한 희망이라도 품고 있는 건가.
이들과 나는 그저 함께 간다는 재미에 이 덜컹거리는 길을 기꺼이 자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가 넘어져 울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올 그 날을 기다리며 불행을 친구 삼아 계속 걷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가끔씩 나도 모르게 나약해져 가시덤불 운운하며 혼자 울컥하면, 그럴 때마다 이 분들은 그렇게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희망의 자세인 것을 웅변하듯 그저 담담히 “그러게 뭣 하러 여기 와서 고생을 사서 해요? 쯧쯧!”하며 괜찮다고 내 어깨를 토닥여주신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