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 3, 1)
12월,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때. 또 1년이 지나간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단풍들도 떨어져 바람에 쓸려 다니고, 그 화려했던 빛깔들을 보려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대림시기를 시작하며 준비한 4개의 대림초, 또 한 개의 초에 불이 켜지기까지 걸리는 시간 일주일,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10개월,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 나오는 시간 20여일, 그렇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창세 2, 2).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왜 하루 만에, 아니 한순간에 그 일을 이루지 않으셨을까? 왜 이렛날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모든 일에는 그 때가 있고, 모든 것에는 그 속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물의 고유한 때
살아있는 모든 것은 그 고유한 때와 속도를 가지고 있다. 나무도 풀도 그 때가 있고, 동물도 벌레도 다 그 속도가 있다. 정해진 때에 태어나고, 일정한 속도로 자라나고 살아간다. 그리고 때가 되면 사라진다. 모두들 그 때와 속도를 지키며 더불어 살아간다. 당연히 인간도 출생, 성장, 죽음 등 그 때와 속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오직 인간만이 그 때와 속도를 벗어난다.
인간의 가장 빠른 속도는 기껏해야 힘껏 달리는 정도, 또 그렇게 달릴 수 있는 거리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인간은 그 속도를 한참 벗어나 있다. 자전거부터 시작해서 초음속 비행기까지. 하루, 한 달, 일 년 아니 일평생을 다 걸려도 가지 못할 곳을 하루에 간다. 인간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졌다. 그러나 그렇게 빨라져서 과연 인간은 그만큼 더 행복해졌을까? 더 풍요로워졌을까?
과일과 채소들이 제때, 제철을 모르고 쏟아져 나온다. 성장호르몬을 먹고 빠른 속도로 심하게 비대해진, 그 때와 속도를 벗어난 그것들이 과연 사람에게 좋을 수가 있을까? 과일과 채소의 때와 속도를 기다리지 못해 한 겨울에도 불을 때서 온도를 맞추고, 약을 치고 비료를 뿌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것들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건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과일이나 채소의 모양과 맛을 지닌 공산품일 뿐이다. 그리고 그 연료와 재료는 다 어디서 오는 것들인가. 한정된 에너지 자원들은 그 때와 속도를 무시한 인간들의 욕망과 욕심으로 고갈되어 가고 환경은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 후손들의 것을 빼앗는 도둑질과 다를 바 없다.
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비쌀 수밖에 없고 그것을 살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사람들 사이에 차별이 생긴다. 한때 유행했던 광고 문구, 빠름! 빠름!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물건일수록 인기는 높아가고 가격은 올라간다. 그리고 그것을 살 수 있는 사람 역시 제한되어 있다. 사람들 사이에 벽이 생기고 서로 갈라서게 된다. 이렇게 그 때와 속도를 파괴한 우리 인간이 서로 간의 불평등과 차별을 만들어낸다.
시내를 나가보면 여유 있는 사람들은 관광객들을 제외하면 별로 없다. 모두들 뭐가 그렇게 바쁜지. 현재 인간의 걸음속도가 과거에 비해 빨라졌다고 한다. 더 편리해졌고 더 풍부해졌는데 왜 그렇게 바쁘게들 살아가는 걸까. 오늘날 사람들이 그렇게 바쁜 것은 속도를 더 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그 속도를 벗어나서 그런 건 아닌지.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여럿이 가라’는 말이 있다.
속도가 이 시대의 가치가 되어버린 지금, 빨리빨리 가야 하는 데 어찌 옆 사람이나 뒷사람을 돌아다 볼 수 있겠는가. 누가 고통 받고 누가 죽어 가는지 들여다볼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 빠름이 이 시대의 가치인 이상 사람들은 홀로 가기에도 바쁘다. 옆에서 누가 추위에 떨고 굶주리며 누가 죽어 가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빨리 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 인간 본래의 그 때와 속도를 벗어난 결과이다.
불평등과 차별은 갈수록 심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그리고 이런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홀로 외톨이가 되어가고 고독 속에서 시들어간다. 인간이 하느님이 주신 속도를 벗어난 지금 그 빠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장애가 되고 죽어 가는가. 하느님이 정해 주신 그 때와 속도를 벗어나는 것은 나의 불행뿐만 아니라 이웃의 불행이기도 하다.
주님의 오심을 깨어 기다리는 대림시기, 하느님이 정해주신 그 때와 속도를 기억하며 나의 때를 깨닫는 시기이고 내 인생의 속도를 성찰하는 시기이다. 그것을 지킬 때에만 우리는 더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있으며 가난한 이웃을 돌아볼 수 있고 그들에게 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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