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교황 프란치스코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거대한 세계 조직의 수장으로서의 높은 지명도가 기득권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다. 기득권으로야 이미 두 번이나 타임지 커버를 장식했던 오바마 대통령이나 요즘 난리가 난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 혹은 미국의 동성결혼법 위헌 결정을 이끌어내 동성애자들의 환호를 받았던 에디스 윈저도 못지 않다.
지난 한 해, 팍팍한 사회 현실 속에서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교회의 모습에 답답증을 느끼던 이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던 교황. “이 분 정말 인물이네”라던 느낌을 다른 모든 이들도 똑같이 경험하고 있었다. 타임지는 교황을 뽑은 이유로 겸손과 열정, 특히 교회 자신의 ‘치유’에 파격적일 만큼 단호했다는 점을 들었다. 개인적으로 그분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는 소탈하고 소박한 유머이다. 누구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전통에 매이지 않되, 사람에 대한 호의를 잃지 않음으로써만 나올 수 있는 격의없는 웃음과 농담. 교황의 의자를 차지하고, 치맛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는 꼬마, 교황의 모자를 벗기고 쓰다듬는 어린아이는 의전 담당을 당황케 할 망정 그분의 권위에 누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편태의 고통을 즐기던 때도 역사 안에 있었지만 신앙은 오히려 기쁨과 웃음을 준다는 것을 교황은 증명했다.
호감의 두 번째 이유는 단호함이다. 이른바 ‘노숙자 예수’, 담요를 뒤짚어쓰고 도시의 벤치에 가로로 누운 모습의 청동 조각상을 설치하고, 축복하며 그 차가운 무릎을 매만지면서 기도를 바치는 교황의 모습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차디찬 거리로 내몬 불의한 사회 현실에 대한 항변이기도 하다. 교황은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후안무치한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체제를 ‘새로운 폭정’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의 극우보수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비난하자, 이탈리아 일간지와 인터뷰를 갖고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며, 이른바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지금은 ‘유리잔이 차면 마술처럼 잔이 더 커져 버린다’고 비판함으로써 가진 자들의 무제한적으로 팽창하는 탐욕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호감의 세 번째 이유는 비판과 질책이 교회 바깥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도 똑같이, 아니 오히려 더 날카롭고 예민하게 향한다는 점이다. ‘신앙의 해’는 개인 신심에 집중되고 극히 개인적인 내적 영역의 쇄신만 강조된 경향이 있었다. 이는 ‘새로운 복음화’ 여정의 첫 걸음이었다는 점에서 이해할만하지만 역사 의식, 교회 구조와 제도, 공동체적인 쇄신, 사회적 차원의 관심과 참여의 측면은 거의 배제되어도 괜찮다는 오해를 불러왔다.
하지만 교황은 신앙이 지닌 사회적 측면이 오히려 복음의 본질적 요소임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 폐쇄된 교회의 모습을 질타하고, 세속보다 더 세속화된 교회를 개혁하는 것을 교황직의 첫 과제로 삼았다. 그는 내놓고 말한다. 전통과 관례에 얽매인 것들 중에서도 복음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고. 언제나 기준은 본래 의미의 복음이고, 교회 안에 인간이 만들어놓은 인위적인 권위는 복음에 비추어 개혁의 대상이 된다.
저명한 바티칸 소식통 존 앨런 주니어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이 50년 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세기적인 연설 ‘나는 꿈이 있습니다’와 닮아있다고 말했다. 흑인과 백인이 형제처럼 살아가는 꿈을 꾸던 킹 목사와 더 선교적이고 더 관대하며 변화에 대한 용기를 지닌 교회를 꿈꾸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술자리에서 자조하듯 투덜거리면서도 현실로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던 이상적 교회의 모습을 교황은 분명히 확신한다. 사실,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신앙 역시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교황의 꿈 이야기에 더 귀기울일 생각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