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 우리 가족은 성당에 가야하기 때문에 평일보다 더 바쁘다.
아빠의 불호령에 아이들은 허둥지둥 일어나 세수하고, 식사 준비와 설거지까지 돕는다. 아이들은 성당에 도착하자마자 합창단 연습실의 의자를 정리해야 한다. 또 마실 물을 떠와야 하고 단원들을 앉을 자리로 안내해야 한다. 연습 전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는 것이 즐거움인 우리 단원들은 연신 내 아이들을 찾는다. 연습 중간 아이에게 눈짓만 하면 기특하게도 그 상황에 꼭 필요한 일을 해낸다. 또래보다 몸집이 작은 둘째는 조막만한 손 때문에 단원들을 자리에 이끌 때마다 밥 좀 많이 먹으라는 말과 함께 귀여움을 많이 받는다.
아이들이 특별한 소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토요일과 공휴일에까지 생업에 매달려야하는 아빠와 주일날마저 떨어지기는 싫어, 그저 이곳에서 일을 나누어 맡으며 나와 함께 주일을 온통 보내는 것이다.
처음엔 가족까지 끌어들일 생각은 아니었다. 3년 전 첫 연주회 준비를 하면서 단원들을 향한 신경질이 많아진 나를 보며, 닦달하는 나대신 이들의 맘을 풀어줄 누군가가 꼭 필요했는데 아내가 기꺼이 그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연습 중간에 잘못하는 부분을 야단치는 동안에도 내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면 단원들은 편안해한다. 연습을 밀어붙이는 동안 아내는 단원들에게 차를 나눠주며 좀 쉬었다 하라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단원들은 내 아내가 막아주니 내게 아무리 야단맞아도 무섭지 않다고 좋아하지만, 아내의 존재 때문에 맘 놓고 야단칠 수 있는 건 오히려 내 쪽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사랑이 세상에서 말하는 달콤함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대부분 사랑은 얻는 것보다 포기해야하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그럼에도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이 쓰디쓴 기쁨에 몸을 던져야할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순간이 온다면 오늘을 기억하며 망설이지 않을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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