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막을 올렸다. 12월이면 일반 공연 무대 뿐 아니라 전국 각 성당과 개신교회에서 종종 선보이는 성극 ‘빈 방 있습니까’이다.
주인공 덕구는 평소 지진아로 놀림을 받지만, 자신감을 찾아주려는 교사의 배려로 이번 연극에서 여관 주인 역을 맡게 된다. 만삭의 마리아와 애가 타는 요셉에게 냉정하게 ‘빈 방 없다’고 말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덕구는 그저 연극일 뿐인데도 차마 그 말을 내뱉지 못한다. 도리어 ‘마리아 뱃속에 예수님이 계시죠? 마리아와 요셉이 너무 불쌍해요’라며 눈물짓는다. ‘어떻게 날 위해 오신 예수님을 춥고 초라한 마구간에서 낳으라고 하냐, 하느님께선 우리 집에 빈 방이 있다는 걸아시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결국 ‘난 그럴 수 없었다고, 그럴 수 없었다고’라며 엉엉 울어댄다.
예수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 올해도 어김없이 거리 곳곳은 온갖 장식과 이벤트들로 채워지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성탄’을 찾아보긴 어렵다. 이른바 ‘성탄트리’에는 수십 수백 가지 오너먼트들이 달리지만, ‘축 성탄’이라고 쓰인 오너먼트는 이제 판매하는 곳조차 찾기 어렵다. 대형서점과 팬시문구점 등의 입구부터 진열된 이른바 ‘성탄카드’들에서도 예수님은 사라지고, 연예인이나 동물, 각종 엽기적인 그림들이 등장한다.
‘산타’는 있어도 ‘예수님’은 없는 성탄절 세태를 반영해주는 단면이다.
냉소적인 태도로 ‘남의 생일에 왜 호들갑이냐’, ‘이게 구세주의 생일 축하냐’라고 말하는 비신자들의 목소리를 예사로 들어 넘길 순 없다. ‘성탄’을 상업적 기념일로 만드는데, 신자들은 예외였다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려는 뜻으로 가득한 덕구의 마음은, 우리 마음 안의 빈 방이 성탄절 휴일 놀이 계획으로 혹은 화려한 선물들로 채워지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공으로 모실 ‘빈 방 있습니까?’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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