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추세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유엔의 기준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만 65세 이상의 인구가 7퍼센트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퍼센트 이상이면 고령사회, 20퍼센트 이상이면 초고령화 사회이다.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고령자 비율이 11.8퍼센트인데 반해, 천주교 신자의 경우는 15.1퍼센트에 달한다. 한국천주교회는 이미 고령 사회에 접어든 것이다. 교회가 노인사목에 한 걸음 더 빨리 나서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문제는 출산률 저하에 따른 고령자의 비율이 증가한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과 행복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 속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군 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생각할 경황이 어디 있었을까. 어린 자식들을 먹여야 한다는, 설령 자신은 굶는 한이 있어도 자식들만큼은 공부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이들이 노후를 대비할 여유가 어디 있었을까.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일손을 놓고 뒤로 물러나 앉은 노인들은 이제 자신을 돌볼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다. 노인들이 건강이나 경제적 문제, 또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까닭이다.
자살률 급상승
통계청 보고서의 2002년과 2012년을 비교해 보면, 사망원인 순위 중 자살이 8위에서 4위로 급상승하였다. 자살 사망자 수를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인구 10만 명당 17.9명이었던 것이 28.1명으로 10.2명이 증가하여 무려 57.2퍼센트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면은 OECD 표준인구 10만 명당 평균 자살률이 12.5명이라는 사실에서도 심각성이 드러난다. 통계청 자료에서 주목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2012년 자살자 수의 평균이 28.1명인 데 반해, 50~59세는 35.3명, 60~69세는 42.4명, 70~79세는 73.1명, 그리고 80세 이상은 무려 104.5명에 이르고 있다. 80세 이상 노인의 자살이 50대에 비해 세 배나 된다.
자살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절망이 아닐까 한다. 희망이 끊어진 상태, 다시 말해 기대와 바람을 포기한 상태가 사람을 극단적인 경지로 몰아가는 것이리라. 더 이상 기대하고 바랄 것이 없고, 더 이상 바라볼 곳이 없는 지경이라면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산다는 것은 소망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몸짓이자 희망의 빛으로 나아가는 여정이 아닌가 한다. 절망을 생지옥이라 한다면, 희망을 생천국(?)이라 칭하면 어떨까. 현세에서 맛볼 수 있는 하느님 나라 말이다.
선조들의 순교영성
우리 신앙선조들의 순교영성은 오늘날 만연하는 죽음의 문화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백여 년전 이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이래 박해의 피바람이 모질게 불었다. 신앙선조들은 지독한 고문과 참혹한 죽음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았다. 먹을 것이 없어 감옥에 깔아놓은 짚 멍석을 뜯어먹으면서도 의연히 천주를 증거하였다. 천주께서 함께 하신다는 굳은 믿음과 더불어, 영광의 화관을 쓰고 천당에 가서 천주를 뵐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선조들이 입에 달고 다니던 천주가사 중 <망덕가>의 구절이 새롭다.
‘천주대전 바라나니 정성으로 바라노라 / 공부모(하느님)를 언제볼꼬 어서보기 바라노라 / 예수성체 언제볼꼬 어서보기 바라노라 / 동정성모 언제볼꼬 바삐보기 바라노라 / 우리주보 언제볼꼬 바삐보기 바라노라’
신앙 선조들은 잠시 잠깐 지나가는 번개 같은 현세에서의 즐거움과 괴로움보다 영원무궁한 천당과 지옥에서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염두에 두었다. 천주가사 <선종가>, <사심판가>, <공심판가>, <천당가>, <지옥가>를 읊조리며 사말(四末)교리를 되새겼다. 죽음 이후에 맞이할 심판과 부활, 그로 인한 영원한 삶과 무궁한 복락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에 궁핍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이 기쁘고 즐거웠던 것이다.
노인은 복된 존재
노인은 죽음을 목전에 둔 가련한 존재가 아니라, 부활의 기쁨을 먼저 맛볼 복된 존재이다. 가족과 사회를 위해 주변을 돌아볼 틈 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노인들이 이제는 차분히 숨을 고를 때이다. 자신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을 누리며 새로운 삶에 대한 꿈과 희망을 북돋을 때이다. 하느님 나라에 머물며 그분을 직접 뵙고 그분의 행복에 참여하는 지복직관(至福直觀)에 대한 꿈과 희망을 말이다. 그때 우리는 죽음을 묵상하며 ‘영원한 삶과 육신의 부활’을 굳게 믿을 수 있으며, 오늘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를 준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김문태 교수는 현재 가톨릭대학교 ELP(Ethical Leader Path) 학부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연구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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