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은 세계 평화의 날이다. 또 평화를 사랑했던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다. 하지만 전례력에 새겨진 작은 글씨들의 의미는 현실에서 소용이 없다. 시리아에서는 3년이 다 되도록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고(故) 이태석 신부의 사랑으로 희망이 꽃피는 듯 했던 남수단은 다시금 내전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 위해서도 ‘평화’는 차가운 길거리로 내몰려 외면 받고 있다. 몇 해 전, 도심 한 복판에 쌓인 컨테이너 성벽처럼 거리가 또 한 번 ‘벽’으로 둘러싸였다. 소통과 화해의 여지는 전혀 없어 보였다. 평화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이번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불평등과 빈곤, 불의의 여러 상황들, 물질만능주의는 “다른 이들의 고통에 점차 ‘둔감해지고’ 우리 자신 안에 갇혀버리게 만드는 ‘무관심의 세계화’ 속에서 자주 거부되고 무시”되고 있다. 한 예능 프로그램의 유행어처럼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심과 개인주의가 평화를 무자비하게 깨뜨린다.
평화를 살아가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일까? 교황은 담화를 통해서 그 답도 제시했다. “형제애는 평화의 바탕이며 평화로 가는 길입니다.” 교황의 말처럼 평화의 길이자 바탕이라는 형제애는 결코 혼자서는 만들 수 없다. 서로가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소통을 해야 한다. 또 의견이 달라 싸우더라도 화해의 길을 모색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안타깝게도 형제애마저도 사라진듯하다. ‘다름’을 ‘틀림’으로 치부하고, 화해를 모르는 다툼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귀를 막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하지만 평화를 위해서는 내 말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누가 먼저라고 말할 것도 없이 내 귀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평화와 소통의 제일 덕목은 경청이기 때문이다. “에파타!”(마태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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