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다. 벌써 일주일이 지나갔다. 어찐 된 셈인지 올해는 그다지 결심도 없다. 다만 전에는 그래도 누우면 홀쭉하게 들어가기라도 했던 아랫배가 이제는 어떤 자세에도 탱탱해 불편한지라 운동은 좀 해야겠다는 정도의 다짐은 해본다. 그런데 그것도 여의치 않은 것이, 작심삼일이라고들 하지만 한 10분쯤 텅빈 사무실에서 허우적대다가 단박에 귀찮아져서 달달한 커피 한 잔을 타 들고 다시 의자에 앉는다. 그러면서, “내일부터…”라고 중얼거린다. 설탕이 들지 않은 원두커피를 마셔야겠다라는 생각을 매일 하고 있던 중이다.
저녁 늦게 퇴근할 때쯤이면 또 잠시 갈등을 한다. 냉동실에 넣어둔,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해 받아둔 제주도 흑돼지를 “들고 가 아니면 말아?” 그러다가 어느새 사무실 문을 빈손으로 넘어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러기를 벌써 일주일째, 흑돼지는 이미 사무실 냉장고 냉동실 한귀퉁이에서 땡땡 얼어있다. 그 옆에는 지난해 봄에, 역시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낚시 미끼용 오징어도 두 덩이나 들어있다. 그런데, 지금도 집으로 들고가기가 여~전히 귀찮다. 그리고 집에 가면서 다시 갈등하고 고민한다. “내일은 들고 와야지” 하면서. 그리고… 깐 새우도 있다.
삶은 매순간 결정과 결단의 연속이다. 물 흐르듯 유연한 삶이란 사실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세류에 휩쓸려 자기 스스로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전개되는 삶은 결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아주 짧은 순간의 작은 판단과 결정들은, 사실 수많은 갈등 속에서 이뤄내는 ‘결단’이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 삶을 자기가 책임진다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심지어는 “너무 피곤하고 머리가 복잡하니까 오늘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쉬겠다”는 결심 조차도 사실은 중대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많은 문제를, 육체적(동산만한 배를 비롯해)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은 어려움과 문제들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그중에 가장 큰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갈등과 머뭇거림이다. 일단락을 위한 결단보다는, 끝없이 되풀이되는 갈등과 반추와 그로 인한 고민들 속에서 시간과 노력을 소진한다. 신앙생활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춘기 이후 정신적으로 몇 번의 전환점을 겪으면서도 신앙적인 결단은 결코 마무리되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신약의 마지막 책인 요한 묵시록에서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하면서 개탄하시던 그분은 결국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고 통보하신다.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그런 태도는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가식과 게으름에서 비롯되는 것, 하느님께서 그다지도 냉냉하고 신랄하게 꾸짖으신 이유는, 그런 마음에는 일말의 희망도 없다는 판단이었으리라. 어차피, 이성으로 온전히 이해하지도, 감각으로 듣거나 보지도 못하는 하느님을, 어찌 확실하게 알 수 있을까. 다만 우리가 할 일은 결단이다. 한 번의 결단으로 부족하면 다시 또 결단을 내릴 일이다.
그리고 그 결심과 결단은 매일의 사소한 신앙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거창하게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나 열흘 피정이나 삼십일 피정, 혹은 성경 전권의 필사나 매일 새벽미사 참례 등등 다소간 몸과 일정에 무리가 올 수 있는 큰 결심만이 신앙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 눈 뜨면 바치는 짤막한 화살기도, 눈비 내리는 거리에서 폐휴지를 줍는 할머니를 보면서 느끼는 연민, 끼니마다 감사를 잊지 않는 마음가짐, 주일미사에 빠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등 사소한 일상의 신앙행위들은 그 자체로서 결심과 결단이 아닐 수 없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