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새해, 새날, 새아침, 새로운 기운이 우리 모두의 마음에 함께 하길 기도한다. 요한 복음은 ‘한처음’(요한 1,1)이란 단어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한처음은 세상이 시작되던 그 ‘한처음’(창세 1,1)이다. 한처음!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한처음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은 아닐까?
우리에게 한처음이란?
누구에게나 한처음의 공간과 시간이 있다. 처음 학교에 들어가고, 처음으로 성체를 영했을 때, 직장을 출근할 때의 첫 마음, 결혼할 때의 첫 마음, 처음으로 바다를 보고 처음으로 산에 올랐을 때, 그 때 한처음의 시간과 공간.
신학교에 입학해서 몇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산책을 하면서 느꼈던 첫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이것이 나의 길이구나! 드디어 나의 길을 찾았구나!’ 처음 하느님을 만났던 날, 나의 삶을 봉헌하겠노라고 기도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다시 그때,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서품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우주가 내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 하느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다시 그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한처음 세상은 말씀으로 창조되었다.(창세 1,1 이하 참조) 말씀은 정신, 마음이고 세상은 물질이다. 정신, 마음에서 물질이 나왔다. 따라서 물질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정신, 마음이 먼저 있었던 것이다. 물질은 정신을 실현시키기 위해 있는 것이다. 정신을 이루기위한 도구인 것이다. 정신이 물질보다 우선이다. 그런데도 지금은 거꾸로 정신보다 물질이 먼저인 시대가 되었다. 물질로 정신을 채우고 마음을 이루려는 세상이 되었다.
남녀의 사랑은 정신적인 것,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랑을 표현하고 이루기 위해 물질적인 것들이 필요하게 된다. 물질 이전의 순수한 정신적인 사랑, 마음의 교류, 그것이 두 사람의 한처음이다. 그러나 점점 물질적인 것에 마음과 정신을 빼앗기면서 물질로써 사랑을 이루려고 한다. 마음을 대신하려 한다. 한처음에서 벗어난 것이다. 사랑이 점점 퇴색되어 가고 희미해져 간다. 물질로 정신과 마음을 채울 수는 없다. 정신과 마음을 물질로 대신할 수는 없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정신과 마음이지만 지금은 이것을 TV와 컴퓨터,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있다. TV와 컴퓨터, 스마트폰이 사랑을 절대로 대신할 수는 없다. 아이들이 어찌 병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에 목마른 아이들이 망가지고 있다. 다 한처음을 벗어난 결과다. 한처음을 잃어버린 까닭이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정신과 마음보다 물질이 먼저고 우선인 시대가 되었다. 돈이 된다면 사람 몇 명이 죽어도, 인간을 사고팔아도 괜찮은 세상, 동물들을 삶의 터전에서 내쫓고, 나무들을 베어버려도 그곳에 도로가 뚫리고 건물이 들어서면 괜찮은 시대가 되었다. 세상이 망해가고 있다. 사라져가고 있다.
첫마음으로 돌아가길
나무는 빈 몸으로 새해, 새날, 새아침을 맞이한다. 맨몸으로 새해, 새날, 새아침을 시작한다. 그래야, 빈 몸이고 맨몸이어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마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 산에 갔다가 눈이 쌓인 채 쓰러져 있는 나무를 보았다. 순간 그 나무의 유언을 보았다. ‘욕심내지 말라! 많이 갖지 말라! 탐하지 말라!’ 순간 그 나무의 외침을 들었다. ‘내려놓아라! 버려라! 비워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울 때 우리는 한처음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 한처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비우고 버려야 한다.
국가의 한처음은 민중이고 국민이다. 민중과 국민이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 국가이다. 그러나 물질이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민중이나 국민보다 물질과 이익이 우선이다. 생명보다 경제가 우선이다. 그런 국가는 망하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민중과 국민을 존중하고 우선시 하지 않은 국가는 역사 속에서 다 사라졌다. 이것은 한 개인이나 조직, 단체도 마찬가지다. 그 한처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한처음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정신과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빈민사목위원회의 정신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이다. 빈민사목위원회가 시작된 그 한처음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이 정신이 빈민사목위원회의 활동과 방향에 대한 기준이고 원칙이다. 성찰의 기준이다. 이 정신을 벗어나면 빈민사목위원회는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대한민국의 정신은 헌법이다.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신이다. 우리는 이 정신을 잊어서도 잃어버려서도 안 된다. 우리는 이 정신을 지켜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새해, 새날, 새아침을 시작하며 나와 가정, 이 사회와 이 나라의 한처음을 생각한다.
1991년 사제품을 받은 임용환 신부는 서울 서초동본당 보좌와 군종을 거쳐 1999년 빈민사목에 뛰어들었으며, 2011년부터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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