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자매는 10년 전 고등학교 단짝 친구를 따라 성당에 첫 발을 들였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을 빌자면, ‘친구 따라 성당 간다’가 된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 개신교 예배당에 잠시 다니며 어린이 찬송가 등을 따라 부르던 경험에서, 또 개신교단에서 설립한 중학교를 다녔던 탓에 ‘예수님’에 대해 다소 친근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당을 찾기는 처음이었다.
그 친구가 어느 날 ‘카타리나’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한 것이 계기였다. 성당에 무언가 ‘공부’를 하러 다닌다고 했는데, 그사이 ‘영세’를 했다니… S 자매는 성당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밥을 먹을 때 마다 성호를 긋는 친구가 성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하여튼 S 자매는 그렇게 친구 손에 이끌려 예비자교리반에 등록을 했다. 다소 지루했던 교리 수업도 견디며 몇 개월 동안 교리를 익혔다. ‘두근’거리는 찰고 시간도 무사히 넘기고 마침내 세례 받던 날, S 자매는 무언가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쏟았다. 대모님이 뒤에서 받쳐주는 손길도 안온했고, 이마에 흘려지는 차가운 물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영세식이 진행되는 동안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는 미묘한 떨림도 인상적이었지만, 영세를 축하한다고 저마다 작은 선물을 들고 찾아온 구역 신자들도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하느님 자녀 되는 게 무엇이 길래 이렇게 많은 이들이 반기고 자기 일처럼 함께 기뻐할까’ 싶었다. 그날 이후 S 자매는 나름 열심한 신자가 됐다. 신심 서적도 읽고, 레지오 마리애를 비롯해 신심단체 활동도 했다. 그를 따라 남편과 자녀들도 영세를 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소위 ‘냉담 교우’다. 여러 이유로 그냥 시들시들 물 빠져 오래된 오이처럼 신앙생활이 맥 빠진다고 한다. 머리로는 ‘성당에 가야 한다’ 되뇌지만 마음이 ‘냉담’이라는 말처럼 식어버렸단다. 주일미사를 한 번 궐했더니, 차츰 발길이 멀어졌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다른 가족들도 신앙생활이 뜸해지고 있었다. 신앙의 싹이 채 틔워지기도 전에 말라버린 모습이었다.
S 자매와는 서로의 삶의 자리 탓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안부는 계속 확인할 만큼 친한 사이라 할 수 있었다. 신앙생활을 쉬고 있단 얘기에 못내 마음이 무거웠다. 필자 역시 부족한 신앙인 처지이지만, 같은 신자 입장에서 신앙의 자리를 함께 나누지 못하고 소홀 했다는 미안함이 앞섰다.
며칠 뒤 우선 ‘성사’와 관련된 책을 보내주었다. 그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났던, 가슴 뛰게 뜨거웠다던 순간을 기억했으면 싶어서였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책을 다시 들추며 ‘세례’의 뜻을 곱씹어 보았다. 언젠가 줄을 그어 놓았던 구절들이 눈에 띄었다. “세례를 통한 새로운 삶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성령의 업적인 동시에 인간의 응답과 노력을 요구하는 과제”라는 부분이었다.
마침 주님 세례 축일이다. 교회는 이 축일을 지내며 우리 자신이 물로 세례 받았던 바를 상기시킨다. 그 세례를 받는 조건은 ‘신앙’이 아니었던가. 교회에서 매년 세례 서약 갱신 예식을 하는 것도 그러한 의미 때문이리라.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태어났던 은총의 때를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응답과 노력에는 과연 충실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그저 신자가 되는 통과의례로, 몇 년 차 신자임을 드러내는 신앙 경력의 잣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 사람이 되었던 순간을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한편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라 할 것이다. 새로운 복음화를 향한 한국교회의 발걸음은 그러한 신앙인 각자의 초심을 지키는 새로운 마음에서 비롯될 것이다.
새해, 그리고 주님 세례 축일이다. 더욱 새롭게 우리 자신의 ‘세례’를 마음에 담고 그 은총을 되새기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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