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졸업하자 마자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고등학교로 각자 배정을 받는 바람에 몇 번 만나지 못했고, 그러다가 입시 준비에 시달리면서 그냥저냥 헤어져 지금은 만나지도 못하고, 연락처도 모르는 그런 사이가 됐긴 했지만, 그래도 항상 ‘친구’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얼굴이다.
그 친구의 부모님은 중국집을 운영하셨다. 녀석의 방은 가게 이층, 지금 생각하면 참 누추한 곳이지만, 다락방은 아이들의 로망이 아니던가. 채 몸을 반도 세우지 못하는 낮은 천장에 휑하니 넓기만한 이층 다락방이었지만 놀기에 필요한, 있을 것은 다 있었다. 더욱이 중국집 이층이라니... 일년 내내 구수하고 달달한 짜장면 냄새가 아래에서 올라온다. 짜장면은 라면처럼 물리지도 않는다.
어찌됐든, 문제는 녀석의 오지랖이었다. 어찌 된 일이 녀석과 함께 있는 시간은 도무지 짬이 없다. 이것저것 참견하느라 분주했고, 그게 운명인지 녀석과 함께 있으면 없던 일도 생긴다. 하다 못해 동네 오락실을 가도 주인 심부름을 할 일이 생긴다. 녀석의 광범위한 호기심, 사람과 세상과 그 안의 다양한 관계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 그리고 삶에 대한 진한 성실이 그런 성가신 일상의 원인이었다.
교황청의, 바티칸 라디오 직원들이 하는 이야기가 얼마 전 외신에 언급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의 주인(혹은 봉사자)으로 머물면서 교황청 직원들이 무지 바빠졌다는 투덜거림이다. 하지만 그들의 애정 어린 불평은 이내 따뜻한 감사와 흥겨운 신바람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말인 즉슨, “일은 몇 배가 많아져서 힘은 들지만, 정말 재밌고 흥미롭다”는 것이다.
그저 관례와 전통에 매이지 않고, 파격과 즉흥을 즐기되, 그것이 복음과 가난한 이들, 그리고 겸허하고 날카로운 자기 성찰에 대한 무한 오지랖이기 때문에 교황 프란치스코는 매우 바빠 보이지만 즐거워보인다. 그리고 옆에서 그 모습을 보는 이들, 그리고 교황의 오지랖에 함께 엮여 들어가는 이들 역시 덩달아 바쁘고 즐겁다.
올 한 해는 무척 바쁜 해가 될 듯하다. 한 해를 여는 1월에 벌써 두 명의 보좌주교와 한 명의 추기경 임명을 봤다. 한가롭던 일요일 밤에 야습하듯 도달한 새 추기경 탄생의 소식은 당연히 기자들을 투덜거리게 한다. 오랫 동안 기다려오긴 했지만. 미리 귀뜸이라도 좀 해주지. 나중에 알게 된 정황이지만, 이 마저도 교황 프라치스코의 ‘서프라이즈’(깜짝 선물)였다고 한다.
교황은 5월이면 중동 성지를 방문한다. 우리 외신 담당자가 바빠질 것이다. 아직 정확한 일정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교황의 방한 일정이 8월이 될 수도 있다.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한다는 가정이다. 아니면 적어도 10월 시복식에 즈음해서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이든 교황의 한국 방문은 올해 안에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된다.서울대교구가 두 명의 보좌주교와 추기경 발표로 주요한 인사 일정은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보좌주교가 임명되리라고 예상되는 교구도 있다.
옛날에, 20년도 더 전에, 서울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에서 홍보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적이 있었다. 거의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쏟아지는 일들. 큰 행사나 중요한 사안이 발생하면, 당사자들도 바쁘겠지만,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못지않게 정신이 없다. 교회 신문 기자로서 올 한해는 무진장 바쁠 것으로 예상된다. 고달픈 한 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즐겁다. 오히려 바쁠 것이기에 더욱 즐거울 것이라고 예상한다. 중국집 첫째 아들이었던 친구 녀석과 어울릴 때에도 그랬고, 더없이 바쁜 교황님 소식을 전하는 일도 그러했듯이, 올 한해 그득한 대형 이벤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뛸 만큼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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