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멤피스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1968년)이 벌어진 뒤, 극단의 폭력을 낳은 인종차별에 수치심과 분노를 느낀 한 초등학교 교사, 제인 엘리어트(Jane Elliott)는 3학년 학생들과 독특한 실험을 진행하기로 한다. 실험은 아주 간단했다.
학생들의 눈동자 색이 푸른색과 갈색이 많다는 사실을 착안하여, 눈 색깔에 따라 하루씩 차별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었다. 먼저 아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목에 깃을 두르게 하고, 깃을 두른 아이들은 열등한 존재이니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정한다. 제인은 깃을 두른 아이들이 드러내는 모든 행동에 대해 열등함의 증거라고 지적하고, 깃을 두르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우월한 존재로 대우해 준다.
급우들 사이의 갈색눈, 푸른눈의 구분과 차별 원칙은 이틀 동안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별 근거도 없이 우월한, 열등한 존재로 지내는 이틀간의 인위적인 상황을 매우 빨리 그리고 내면 깊이 받아들여, 상대 친구를 차별하는 일을 즐기고 반대로 차별당하는 일에 고통스러워한다.
「푸른눈 갈색눈」(한겨레출판, 2012)이라는 책으로도 출간된 이 ‘차별’ 실험 내용은 차별의 결과가 어떻게 편견을 만들어내고 편견을 확정짓는 경향을 갖게 되는지를 충격적으로 보여 준다. 차별 실험에 참여한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4년 만에 다시 모인 동창회 자리에서도 그 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실험을 통해 열등한 처지에 놓인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되었고,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과 관련이 있고 모든 사람과 우호적으로 지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차별’ 실험은 실제로 매우 위험한 방법이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열등한 존재로 취급당하는 일조차 아이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인 역시 차별을 배울 수 있는 덜 고통스러운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적용하고 싶다고 실토했다. 다만 차별에 대해 말로 가르치기보다 몸으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차별적인 행동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낄지 알아차리게 했다는 점에서 이 실험은 참여자나 관찰자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차별’ 실험의 내용은 사뭇 달랐다. 성인들은 인위적인 차별 환경과 그것을 강요하는 교사의 권위에 곧바로 반발해서, 시간도 1-2 시간 정도로 줄이고 입장도 바꿔 보지 않은 채 끝내야 했다.
성인 실험을 통해 차별에 맞서 일부 사람들이 싸울 때 다른 사람들은 뒷전에 물러나 있다가 승산이 있어 보이면 그제야 그의 편을 들고, 질 것처럼 보이면 차별 당하는 상태로 그대로 주저앉고 만다는 점이 드러났다. 일단 차별을 하기로 작정한 쪽과 겨루는 일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되고 만다며 체념해 버리는 것이다.
“세상 일이 다 그런 거 아니냐”고 말하는 것으로 볼 때, 차별당하는 상황에서 성인들은 아동들에 비해 스스로를 훨씬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만다.
제인 엘리어트는 “편견은 차별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인 경우가 많다”면서, 편견은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시야를 좁히고 세계를 축소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그치는 반면, 차별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불구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더 해롭다고 말한다.
「푸른눈 갈색눈」이라는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 견주어 본다. 인위적인 ‘차별’ 실험이 위험하다고 했던가. 그러나 빈부격차, 사회적 지위, 종교, 정치적 견해, 성적, 외모 등 수를 헤아리기 힘든 차이에 근거한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목숨마저 내던지는 사태를 우리는 날마다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어떤 임의적인 차이에 근거한 차별이란 터무니없으며 비합리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종이나 피부색, 종교의 차이에 근거한 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 들어 자신과 이념이 조금이라도 다르다 싶으면 곧바로 ‘종북’ 딱지를 붙이려 드는 태도 역시 차별 행위이긴 마찬가지다. 우리가 차별의 문제를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않으면 외부로부터 말도 안 되는 편견을 강요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깨어 인식하는 일이 긴요하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라”는 말씀이(마태 7,12) 그저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생활의 황금률로 자리 잡아야 함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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