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새 사제 12명이 1월 20~23일 3박4일간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등 사제단과 함께 일본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오랜 박해기간 동안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했다는 점에서 한국교회와는 깊은 신앙적 유대를 맺고 있는 일본의 순교성지들을 둘러보면서 새 사제들은 앞으로 흔들림 없이 하느님만 바라보며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울러 사제단은 순례기간 중 일본 나가사키대교구장 다카미 미츠아키 대주교를 비롯한 일본 사제·신자들로부터 환대를 받았으며, 내년 3월 17일 나가사키에서 거행될 ‘일본 신자 재발견 15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 받기도 했다. 이어 조병진(베니뇨) 신부의 순례소감문을 소개한다.
저는 지난해 12월 27일 사제로 서품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성소의 길이 하느님의 은총임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도 부족함이 많은 저 자신의 모습에 두려움이 컸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사도 18,9-10)고 말씀하신 주님께 의탁하며 교회의 일꾼으로 저를 봉헌하였습니다. 첫 미사 때 받게 된 신자분들의 축하 역시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달라는 간절한 바람으로 받아들이며 무엇보다도 첫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로 다짐하였습니다.
그렇게 사제품을 받고 이 곳, 저 곳에서 미사를 드리며 서품의 기쁨을 여러 신자분들과 함께 나눈 뒤, 함께 품을 받은 저희 12명 사제들은 ‘새 사제학교’를 마치고 일본 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3박4일간의 성지순례 일정은 많은 선교사들과 일본의 순교 성인들의 피와 땀을 만날 수 있었던 그야말로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동양의 사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복음 전파를 위해 처음 상륙한 히라도, 일본에서 최초로 순교한 26위 순교 성인들의 얼이 담겨 있으며 무엇보다도 원폭 피해로 신자들이 하느님의 깨끗한 번제물로 바쳐진 도시 ‘나가사키’, 16세기 말부터 250여 년간의 박해를 이겨내고 신앙을 지켜온 신자들과 한 사제와의 재회가 이루어진 오우라성당과 운젠 지옥 순교지 등 순례하는 성지 곳곳이 성령의 현존을 전해주었습니다.
3박4일의 모든 일정들이 소중한 시간들이었고, 저희의 발걸음이 닿는 곳 모두가 믿음의 씨앗인 순교자들의 피가 어려 있는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정들 가운데에서 특별히 저에게 감동을 주었던 곳은 일본 ‘평화의 성자’ 나가이 다카시 박사가 생의 마지막 3년을 보낸 여기당과 나가이 다카시 기념관이었습니다.
신학교 4학년으로 복학하기 전 「나가사키의 노래」라는 책을 읽은 후부터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삶을 마음속으로부터 존경해왔습니다. 그래서 무기가 아니라 펜을 들고 평화를 수호했던 그분의 여기당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여기당은 사진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다다미 2장 크기의 여기당 안에는 생전의 물건들이 있었고, 두 자녀인 아들 마코토와 딸 카야노가 함께 있는 사진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협소한 곳에서, 그것도 피폭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여기애인’(如己愛人)의 삶을 실천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러고는 문득,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7만3000여 명의 생명을 앗아갔지만 평화를 위한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숭고한 노력이 펼쳐진 여기당은 아직도 해마다 6만여 명의 순례객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의 평화의 영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여기당과 기념관, 그리고 8500명 신자들의 번제가 살라진 우라카미를 바라보며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신앙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일본의 모든 순교 성인들은 저희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사제로서 새 삶을 출발하는 저희에게 커다란 힘과 위로를 주셨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감사의 기도가 나왔습니다. 또한 서품의 은총도 모자라 이토록 큰 선물을 가득히 부어주신 하느님께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앞으로도 이 감동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주님의 평화를 이루는 일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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