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 주님세례축일 낮12시(로마시간) 삼종기도 후 교황 프란치스코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안드레아 대주교를 포함해 19명의 새 추기경을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너무 급작스런 발표였다. 저녁시간인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교구청에 한동안 확인전화가 빗발치기도 했다.
서울대교구는 즉시 “이번 염 추기경의 임명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과 더 함께하는 교회가 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로 임명된 추기경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절제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니라. 추기경이라는 직위는 한 단계 올라갔다
거나 명예의 상징이 아니라 폭넓은 시야와 광활한 가슴을 요구하는 봉사하는 자리이다. 겸손의 길을 걸은 예수의 모범을 반드시 뒤따라 달라. 그리고 검소한 복음주의적 정신과는 동떨어진 세속적인 표현이나 축하연등을 자제하라” 이 서한에는 그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향했던 사목적 방향이 잘 나타나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더욱더 다급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야전병원과 같은 곳이 되어 세상의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무엇보다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가난해질 용의가 있어야 한다.
지난 1월 14일 염 추기경은 한 언론사와 나눈 인터뷰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뷰에서 염추기경은 “많은 이들이 빈곤으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특히 법이나 사회적인 구조의 잘못 때문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회가 가난한 이들이 당하는 존엄성의 침해와 고통에 주목해야 한다”며 “교회는 스스로 더 가
난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새 추기경에게는 항상 그 시대의 요구가 있다. 추기경이란 직책이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지도자라는 숙명을 갖기 때문이다.
새추기경에 대한 기대가 단순히 교회 내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 까닭이다.
염 추기경은 서임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가톨릭 평신도들이 로마 교황청에 진보적 추기경 임명 청원을 추진한 것’과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추기경 서임’을 청원하는 서명 작업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그는 “알고 있다. 여러 의견이 있을수 있다”며 “제일 중요한 건 하느님 앞에 내 편, 네 편이 없다. 한 형제다”라며“예수님이 생명까지 내놓은 형제성이 우리에게 삶의 길을 가르쳐준다”고 했다.
새 추기경에게 가난한 교회의 건설과 이를 위한 개혁의 실천이 시대적인 사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왜 가난해져야 하는가? 구약성경에서 보면 재물은 하느님의 축복이며 인간이 희망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과 함께 사회구조가 바뀌면서 사회의 불의와 부정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사회적 가난과 물질적 결핍이 권력자나 부자들의 착취와 이웃에 대한 무자비함이 가난의 원인으로 인식되었다. 성경에서는 점차로 가난한 사람은 선량한 사람들이며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던 자들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가난은 사회적, 물질적 결핍 뿐 아니라 신앙적으로 보면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의 어떤 것에도 애착을 갖지 않고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예수님 자신도 죽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고 가난하게 되었다. (마태 26, 26-28 참조) 특히 오늘날 같이 물질중심의 시대에 교회는 진정으로 ‘가난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교회가 먼저 물질중심의 삶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재물과 이기심을 벗어나 하느님만을 섬기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이다.
염 추기경은 겉치레나 지나친 의전 등을 싫어하고 격의 없이 소탈하고 여러 사람들과 소통을 좋아한다. 많은 이들은 새 추기경이 가난한 사람들의 벗이 되어 교회가 진정으로 이 시대의 빛과 소금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교회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허영엽(마티아) 신부는 1984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본당사목과 성서못자리, 교구 문화 홍보국장을 거쳐 현재 서울대교구 교구장 수석비서로 교구 대변인 역할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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