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뀐다는 것이 실은 별 일도 아닌데、가령 천정에 오가는 쥐나 외양간에 묶인 소에게는 묵은해나 새해가 아무런 뜻도 있지 않을 것인데、유독 사람들만이 달력 한장 바꿔 다는 일을 가지고 혹은 이렇다거나 혹은 저렇다는 식으로 의미 부여를 하는 버릇이있다. 실제로 12월 31일에서 1월 1일 사이의 밤이 그 나머지의 무수한 밤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면、세월이라는 것에 대한 인간의 끈끈한 정념(情念)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인지 새삼스러워진다.
저 무성했던 호화판 망년회의 술자리 같은 것은 그러한 어처구니 없음의 극치이다. 신문이나 방송의「신년특집」같은것 역시 인간의 의미부여 벽(癖)이 빚어내는 전형적인 산물이다. 시간이라는 가공(架空)의 선(線)을 두고 인간은 무엇이든 흔적을 남기려애를 쓰고、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어찌 생각하든 해가 바뀌기는 바뀌었다. 아무나 뜻없이 뇌까리는대로「새 해가 밝았다」고. 그것이 뜻없는 것임을 아무리 강변한다해도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뜻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 문제이다. 망년회의 술이 채 깨기도전에 신문방송들은「신년특집」을 쏟아내었다. 갑자기 새해는 무수한 의미들로 중무장을 한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사이에 세상은 안면을 싹 바꾸었다는 느낌이다. 역시 해가 바뀌기는 바뀐것이다.
묵은 해는「1984년」이었다. 조지오웰의 예언적 소설이 제목으로 삼았던、그 우합(偶合)이었다. 조지오웰의 예언적 소설이 제목으로 삼았던 그 우합(偶合)의 해. 소설의 내용이 과연 현실에서도 우합을 할 것이냐로 연초부너 긴장했던 사람들은 소설 속의「빅 브라더」가 현실에 있다거니 없다거니 하는 논쟁을 해를 넘기도록 다 끝내지 못했다. 결론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은「긴장」의 계속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1984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묵은 해는 또한 한국교회의「2백주년」이었다. 교황께서「자원방래(自遠方來)」하시고 103위의 성인이 이땅에서 새로이 나시는 큰 영광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 땅에 빛을」구호로 사업도 행사도 거창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중에 누가「이 땅에 빛을」증거 했노라고 자랑할 수 있는지、한국교회가 과연 그만한 영광에 값하여 자홀(自惚)할 수 있는 것인지. 아직도 여전히 초라하고 부끄럽다는 점에서「2백주년」은 역시 진행형의 과제로 무겁게 남아 있다.
새 해는 1985년이라고 한다. 간지(干支)로는 을축(乙丑)이다. 일제의 강점(强占)과 압제(壓制)로부터 해방이 된 1945년으로부터 꼭 40년이 된다. 1945년의 간지는 을유(乙酉)였다.
간지의「을」과 40년이라는 시간의 우합이 공교롭다. 이른바「을사보호조약」으로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게 몽땅 넘겨주었던 것이 1905년이었고、그 40년후에 해방이 왔던 것인데、이제 다시 40년이 흘러「해방40년」을 둔 새로운 의무부여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해방 40년은、특히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다시 트기 시작한 때로부터 20년에 닿기도 한다. 한ㆍ일국교는 1965년에 이루어졌다. 그 해도 을사(乙巳)였다. 한ㆍ일관계의 매듭이 올해에 더욱 굵어야하는 까닭은 이처럼중첩되어있다. 더구나 국가원수의 첫공식 방문으로「새 시대」가 열린다고 하던 바로 이듬해인 것이다.
해방 40년에도 여전히 따져 두어야할 일은、과연 우리는 얼마나「해방」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에서 해방이 되고 무엇에서 해방이 되지않았는가. 누가 해방을 당했는가. 아직도 우리를 속박하고 압제하는「대형(大兄)」은 누구인가.
1985년은 총선의 해라고들 한다. 어느새 선거바람이 몰아친다. 따지고보면 며칠 남지도 않았다. 이 선거에 문제가 없지 않다고 하는 견해가 있겠지만、체제논쟁이나 제도론을 넘어서서 12대 국회가「평화적 정권교체」를 지켜보고 증거하는 대열에 서 있어야 할 막중한 소임을 지닌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국회임에는 틀림이 없고、그런점에서 이 선거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진정한 우리들의 관심은 올해에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남북대화가 아닌가 한다. 첫달에 이미 회담이 잇달아 열린다. 정권 담당자들의 정치적 복선이나 술수가 열 겹、스무겹씩 혹시라도 깔려 있다 하더라도、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설혹 그렇다고 치더라도 남북대화는 얼마나 소중한 끼리만의 만남인가. 만나는 것만으로도 국민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벅차 오른다. 그렇게 두근거리고 벅차오르는 가슴을 핏줄 탓이라 해도 좋고 민중의 통일열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해방은 곧 분단이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40년전은 곧 새로운 속박의 시작이었다. 그 분단의 속박이 새 해로 40년을 기록한다. 참으로 길고도 먼 세월이다. 그 해방 40년의 해에 남북의 대화가 본격화하리라는 예상은 뜻이 깊다고 해도 아주 깊다. 해가 바뀌는 것에 대해 아무리 의무부여를 하지 않으려고 한들「남북대화의 해」만은 어쩔수가 없다. 별 일도 아닌 것이 아니라 별일이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것이 국민의 마음이다.
새 해가 밝았다.
해방 40년、총선의 해이고 남북대화의 해이기도 한 1985년이다. 오웰의「1984년」이 여전히 무거운 과제로 남아있는 1985년이 시작되었다.
정말로 새 해가「뜻」있기 위해서、총선과 남북대화를 그르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한마디 기도를 화살처럼 쏠 일이다.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늘 깨어있게 하소서!』
정달영
◇1939년 충북 진천출생
◇1962년 한국일보사 입사
사회부기자 사회부장대우
문화부장 부국장 편집위원역임
◇現 한국일보 편집부국장
가톨릭저널리스트 서울클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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