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씨치곤 꽤나 따스한 어느날 버스안에서 경신생인 나보다 4~5세나 많은 모친구와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반가움이 앞서『정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그간 별고없으신지요?』『예 어딜 갔다 오시는지 정말 반갑군요』이렇게 인사가 오가며 대화가 시작되었다. 우리 옆자리에는 성모성심회 수녀님 한분도 같이 타고 계셨다. 성지미리내 아랫마을에 사는 정씨는 우리 본당 정프란치스꼬 신부님과 같은 항열이기에 나의 성당이야기를 반가이 귀담아 들을줄 알고 여러 이야기를 하였는데 웬걸 인사후 첫마디가『요즈음 천주교신자들이왜 그렇게 옳지 못하지요?』대뜸 이렇게 나오니 만원버스안에서 나는 무안하기 그지 없었다. 같은 신자로서 이럴 수가 하는 생각에 야속하기 조차 했으나 마음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 친구의 대체적인 말인즉 이러했다. 『남을 해치고 형제ㆍ부자간에 조차 불화를 일으키는 신자들이 비일비재하니 도대체 어떻게 된일입니까?』이 물음에 잠시 멍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으나 나름대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며 이 친구의 비뚤어진 신자상을 고쳐보려 했으나 도통 허사였다. 약간의 취지가 이 친구에게 있었으나 취기탓만으로 돌리기에는 뭣한 느낌이 너무 강하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하여 그 친구와 대충 수인사를 나누고 내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름대로 친구의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겨보니 어쩌면 그 친구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통 타락된 세태속에 신자라는 허물만 쓰고 서로 속이고 속는 온갖 악행을 밥먹듯이 저지르고 다니는 현실이 아닌가? 나자신 스스로 되물어도 떳떳이 얼굴을 들 수 있을런지 짙은 회의감이 머리를 스쳤다. 을축년 이 새해는 오늘일을 주님의 좋은 충고로 알고 더욱 신앙생활에 정진할 다짐을 하니 돌아오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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