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어떤 신부님께서 비밀이 원칙인 고백성사의 실례를 얘기한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시골본당에 있는 동료신부로부터 신자들을 위한 일일피정지도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의 일이었다한다.
약속된 날 아침에 그곳에 도착해보니 온 성전안이 비좁을 정도로 신자들이 모여 있었으며 진지하고 열띤 가운데 피정일정을 모두 마치고 고백성사를 주었는데 어찌나 많은 이들이 모았든지 무척 피곤하면서도 흐뭇함을 느낄수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한사람까지 고백성사가 끝나자 고해소 안에서 잠시 쉬시던 신부님이 우연히 신자석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맨 앞자리에 어떤 할머니가 앉아 알이 굵고 긴 묵주를 들고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묵주 한알 한알을 손가락으로 굴려가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듯하여 속으로 같이 따라서 해 보았는데 아무리 빨리 암송을 해도『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음 알로 넘어가곤 하였고 영광송ㆍ신비송ㆍ주의기도를 함께 외우는 중간의 큰 매듭에 가서는 영광송을 미처 다 외우기도 전에 그 다음의 성모송으로 넘어가 버리더라는 것이다. 불과 몇분사이에 그 할머니는 묵주알을 한바퀴 다 돌리고 나서 성당밖으로 나가 버리셨고 신부님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한다.
잠시후 밖으로 나간 신부님은 마침 그 할머니가 혼자 마당에 계신 것을 보고 다가가 조금전에 무슨 기도를 했느냐고 물었더니 보속으로 주신 묵주기도를 했다는 대답이었고 그것을 어떤식으로 하느냐는 물음에 신부님이 그것도 잘 모르시느냐는 핀잔과 함께 설명을 했다. 할머니의 말인즉、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까지 다 알고 계시므로 일일이 기도문을 다 외울 필요가 없고 성모송은『은총을 몽땅、아멘』이라고 하면되고 큰매듭에 가서는『영광이-. 환희(고통 또는영광). 단、하늘에 계신 몽땅 아멘-』이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마저할 시간이 없을 경우에는 묵주를 손바닥에 움켜 쥔채로 성호를 긋고 나서『묵주신공 5단 몽땅、아멘』이라고 하면 된단다.
그리고 할머니 자신은 이런 방법으로 하루에도 수백단의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고 있음을 자랑하더라는 이야기였다.
이상이 고백성사 누설사건의 전모이고 당시에 함께 들었던 친구들이 모두 한바탕 웃으며 배꼽을 쥐고 말았지만 지금도 가끔 그 이야기가 생각나면 웃음과 함께 나 자신도 그 할머니보다 조금도 나은점이 없는 신자가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항상 자신의 편의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바쁘다는 핑계로 묵상과 기도를 게을리하며 일주일 내내 세속일에만 쫓기다가 주일이 되면 한시간 남짓한 미사참례만으로 신자된 본분을 모두 떼우려는 나자신의 모습은 바로『주일미사 참례、나의 임무 몽땅、아멘』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바 없을 것이고 그것은 한 순진한 할머니의『묵주신공 몽땅、아멘』보다 훨씬 더 열치가 없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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