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판매부수만 250만 권을 넘어선 이어령 전 장관의 롱셀러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등장하는 글 한토막.
어느 미국인이 한국전쟁 전 한국에서 한 부부를 만났다. 남편은 나귀를 타고, 아내는 남편을 따라 걷느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미국인이 물었다. “여보시오, 레이디 퍼스트도 모르시오….”
조선 양반이 답했다. “이것은 우리 풍속이오!”
그 미국인이 한국전쟁이 끝나고 다시 한국을 찾았다가 같은 길에서 정반대의 장면을 봤다.
이번에는 아내가 앞에서 나귀를 타고, 남편은 멀찍이 떨어져서 조심 조심 쫓아오고 있었다. 미국인은 그동안 풍속이 많이 변했다고 여겼다가 실상을 알고는 까무러쳤다.
아내를 나귀에 태워 앞장세운 것은 전쟁 통에 사방에 묻힌 지뢰를 밟을까봐 걱정해서였지 아내사랑이 아니었다. 이런 류의 남존여비(男尊女卑)는 많이 사라졌다. 이제는 남자들이 죽겠다고 엄살을 부린다.
최근에는 ‘남편 백화점’ 유머까지 등장했다. 올라갈수록 더 고급 물건을 파는 5층짜리 남편 백화점은 어느 층이든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기서 한 사람을 선택해야한다는게 유머의 룰이다.
어느날 두 친구가 남편 백화점을 찾았다. 1층에는 직업이 있고 아이를 좋아하는 남편이 있다고 적혔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2층이 궁금했다. 돈 잘 벌고, 아이를 좋아하고, 잘 생기기까지 했단다. 3층은 가사분담형이라는 조건이 맘에 들었고, 4층에는 지금까지 나온 모든 조건에 성격까지 로맨틱하단다. ‘결혼 대박’을 기대하며 맨 위, 5층에 들어선 두 여성, 너무 따지다 기회를 놓친다. “… 그냥 혼자 사세요” 팻말 뿐이다.
가부장적 관습이 강한 지난 시절, 각종 부당 대우을 받아온 한국 여성들에게 천주교는 희망이었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는 천주교의 만민 평등 사상은 여성들의 영혼을 구해주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에 시복을 결정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가운데 24위는 여성이다.
역사를 위해 일어선 서울의 순교자 강완숙 골롬바도, 잠시 지나가는 목숨을 참된 생명과 바꾸지 않겠다며 참수당한 대구의 이시임 안나도, 동정 부부로 살다가 참수당한 전주의 이순이 루갈다도 포함됐다. 8월 대전에서 열릴 아시아청년대회 기간 중 방한 시 시복식을 갖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교회의 세 번째 추기경 탄생에 이은 겹경사다.
이제 우리는 순교 영성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는 노력과 순교영성 스토리텔링 작업이 필요하다. 역사의 뼈대와 고증의 바탕 위에 순교 영성을 불러내고, 당시 생활에 대해서는 창조적 상상을 불어넣는 식이다.
일본의 노벨상 후보였던 이노우에 야스시가 몽고의 일본침략에 대해서 평생 연구한 한 교수로부터 연구 자료를 모두 넘겨받아서 여·몽연합군의 1, 2차 일본원정을 다룬 역사소설 ‘풍도’(風濤)를 썼다. 이노우에가 쓴 역사소설 ‘풍도’와 ‘둔황’은 세계 어느 누가 쓴 것보다도 정확하고 감동적이다.
이번에 복자에 오를 강완숙 골롬바는 관아에 끌려가 6번이나 주리를 털리는 참혹한 고문을 겪으면서도 주문모 신부의 행방에 대해서 입다물었다. 주님이 곁에 계시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신앙선조 강완숙 골롬바는 순교 직전, 주 신부의 치명 소식을 듣고 그동안 모시면서 알고 있던 선교 일지를 자세하게 적어서 한 교우에게 맡겼다. 불행하게도 그 치마폭 실물은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스토리텔링으로도 감동적으로 살려낼 수 있다.
사도 바오로는 갈라디아서 5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절제를 가르치고 있다. 세상이 순교를 요구하지 않는 세월을 살고 있는 우리는 신앙선조들의 순교 영성의 본받아 절제와 자유를 삶속에서 실천해야한다. 어떻게? 남을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을 돌아보고, 구도자의 자세로 범사에 감사를 드리며 이웃의 힘겨움을 직접 맞들어주는 것이 21세기형 순교 영성의 표현 아닐까.
최미화 논설실장은 대구가톨릭언론인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며,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거룩한 땅 성지」 「여성 1백년」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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