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하철에서 자주 만나는 풍경 가운데 하나는 남성 노인들의 위세가 이상하리만큼 강해졌다는 점이다. 당신이 사목자라면서 서 있는 승객들을 툭툭 치며 똑바로 서라는 둥 일일이 참견하며 활보하는 70대 남성을 만나는가 하면, 스마트폰으로 쩌렁쩌렁 울리게 노래를 틀어 듣는 노인도 만난다. 공공장소에서의 예의라고는 먼 나라 이야기인듯 행동하는 이 노인들에 대해 승객들은 불만 가득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행여 어린 나이에 버릇없어 보일까 우려해서인지 태도를 바꿔 달라고 요청하지도 못한 채, 그 분이 내리거나 자기가 내릴 때만을 기다리는 표정이다. 물론 일부 남성 노인들의 경우지만, 요즘 더 많이 눈에 띄는 건 나만 느끼는 것일까. 나이가 많다는 거 자체가 무슨 벼슬이나 훈장이 아닐진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성 높이고 위세를 부리면 젊은 사람들은 마땅히 굽신거려야 한다는 듯이 행세한다. 이런 분들을 볼 때마다 ‘품위 있게 나이 드는 일’ 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마음 깊이 되새기곤 한다.
한편 한국 노인층의 일반적인 실태는 어떨까. 주지하다시피 한국교회는 평균 수명의 증가로 노인 인구(만 65세 이상)가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커지는 반면, 출산율 저하로 노인층을 부양해야 할 경제활동인구는 감소하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하지만 최고의 속도와 효율성만을 우선으로 생활 기기의 기계화, 자동화되어 가는 사회, 문화 환경은 노인에게는 따라잡기 버겁고 소외감을 안겨 주기 십상이다. 또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아래 자녀들이 직장에서 내몰리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노인들은 스스로를 폐기 처분되어야 할 존재가 아닌가 하는 자괴감과 무력감에 시달려야 한다. 그나마 노인들이 죽을 때까지 자녀들에게 크든 작든 가진 재산을 넘겨주지 않아야 대접받는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우스갯소리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안하무인의 언행으로 힘을 과시하는 일부 노인들의 경우는 그나마 건강하다고 보아야 할까. 생존 자체에 대한 회의와 우울감에 시달리던 노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비단 노인 개개인이 느끼는 삶의 권태로움이나 신체적 고통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노인들에게 자살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2010년 기준(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률이 33.5명인 것에 비해, 75세 미만 노인의 자살사망률은 81.8명, 75세 이상은 160명으로 평균치의 3배에서 5배에 이른다. 특히 남성 노인은 여성 노인에 비해 같은 연령층에서 3.43배(60대)~2.73배(80대)로 높게 나타난 것으로 보아, 남성 노인이 갖는 무력감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연령 특성상 노인은 배우자나 친지와의 사별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하고, 만성적인 신체질환에 시달리며, 소득원의 감소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듯 다른 연령대에 있는 사람들과는 종류가 다른 스트레스를 겪고 있지만 심리적, 신체적 대응 능력은 취약하기 때문에, 노인은 쉽게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는 충동에 빠질 수 있다. 무엇보다 자살을 시도하는 노인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요인은 가족과 사회로부터의 암묵적인 제재, 즉 독립적인 생활 능력이나 생산성이 없으면 더 이상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존재 가치나 명예를 유지할 수 없다는 신호를 받게 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성장과 경제적 이익 지상주의를 부르짖으며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면서 우리 사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풍요와 발전을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성장을 담보로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와 가족 공동체의 해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음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족 공동체 해체의 최대 피해자는 사회적 대처능력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거나 이미 상실한 약자, 다름 아닌 청소년과 노인층이다.
노년기의 미덕은 ‘지혜’라고 일컬어진다. 인고의 세월을 경험했으니 청·중년층보다 삶의 지혜를 얻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나이 많음이 곧바로 공경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신체적인 쇠약은 자연스러운 변화이니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노년기에는 심리적 건강, 관계상의 건강관리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긴요하다. 필자 부부도 이제 경제활동 막바지에 접어들고 큰 아이가 취업 전선에 뛰어 들고 보니, 장년층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경제활동 계층의 힘겨운 삶에 더 마음이 쓰인다. 나이 들수록 말 한마디, 행동 한 자락도 삼가, 청·중년층이 뭔가 보고 배울 점이 있는 존재가 되려 노력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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