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지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씨앗을 발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잡곡은 토종씨앗으로 재배한 것을 판매하지만 다른 작물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고추나 오이 등은 토종씨앗과 시중에 판매되는 것과는 차이가 큽니다. 토종 고추는 껍질이 얇고 크기도 적어 수확량이 적을뿐더러 가루의 색도 노란빛이 더 많습니다. 껍질의 두께보다 씨앗이 더 많기 때문이지요. 오이도 씨앗이 크기 때문에 선호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토종씨앗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씨앗시장은 외국회사가 잠식해 우리나라 것은 거의 없습니다. 또 수확량이 많고 우수품종으로 나온 씨앗들 중에는 식물과 동물을 교합해 만든 것들도 있습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많은 의문들이 생깁니다. ‘수확량이 늘어 싼 가격에 농작물을 구입하게 돼 배고픈 사람들이 줄어든 것이 더 좋은 것인지?’, ‘건강한 먹을거리나 환경의 부재로 암이나 희귀병, 난치병, 장애아동의 수가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것에 비중을 둘지’ 하는 것들이지요. 이미 변해버린 현대사회 안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는 정답이 없는 시험지를 받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내린 결론은 늘 하나입니다. 아주 작은 나라에서 침묵으로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이 2000년 넘게 넓은 지구 전체의 빛이 되신 것처럼 저의 작은 삶의 선택도 커다란 자연 안에서 작은 빛이 되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하느님의 소중한 피조물을 지켜가야 하는 큰 책임을 지닌 농부니까요.
외국 씨앗회사들이 언젠가 더 이상 씨앗을 주려 하지 않을 때, 여러 종의 것을 섞어 ‘인간이 만든 씨앗’이 도리어 해가 되어 돌아올 때, 제가 지킨 씨앗들이 세상에 빛이 되는 순간이 있겠지요. 오늘도 정성으로 소중한 씨앗이 싹을 틔우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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