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농사가 시작된 기념으로 머리카락을 잘라 소아백혈병센터에 기증했습니다. 작년, 이웃 마을에 사는 중학생 여자아이가 기증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부터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습니다. 기증할 수 있는 기준이 25~30cm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한두 번 약간 긴 단발로 머리정리를 하곤 했는데 이왕 잘라진 머리카락이니 누군가에게 쓰이면 좋겠다고 생각해 작년 한 해 동안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귀찮게 느껴지는 것을 꾹 참으며 길렀습니다.
잘라진 머리카락을 잘 포장해 택배로 보내며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모여진 머리카락을 선별해 쓴다고 하니 제 머리카락이 선택될지 어떨지 알 수는 없지만 결과보다는 제 마음이 중요했습니다. 무엇이든 허투루 버려지는 것이 없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조심스레 살아가는 것이 저의 생활방식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물자가 넘쳐나고 풍부한 세상인 것처럼 보이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세상 곳곳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극심한 가난에 놓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꼭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풍족하더라도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는 습관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자원이라는 것은 결국 ‘자연’에서 나오는 것이고, 사용가능한 한계기준점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풍부하게 나눠야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나눔의 정신이고, 절약하고 조심하며 경계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욕심과 무분별한 마음인 것 같습니다. 가난한 시절을 살아왔던 우리의 부모님들은 콩 한쪽도 나눠먹는 삶의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아파트와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는 벽 두께만큼 타인과 나를 구분 짓고 삽니다.
나누고 함께하는 마음이 줄어들고 있는 시대에 신앙인인 우리의 소명은 마음 안에 따뜻한 촛불 하나씩 밝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순기간 동안 무엇이든 한 가지씩 나눔을 실천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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