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00세 시대, 퇴직 후 제2창업 붐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2011년 현재 여성 84.4세, 남성 77.6세이다. 어림잡아, 퇴직 후 20~30년은 더 산다. 60세가 넘은 노부부에게는 연금이 나오지만, 결혼하지 않은 자녀들의 늘어난 청년기(대개 35세)를 부양하느라 고목나무처럼 기름기 빠진 노후를 보내고 있다.
한국전쟁 휴전 직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baby boomer) 세대들은 조부모와 함께 사는 대가족에서 자라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효도하고, 결혼 후 분가하면서 자녀들만 데리고 핵가족으로 살았기에 처음으로 버림받는 ‘마처족’ 인생들이다. ‘5563’세대들은 퇴직 후에도 스스로 노후를 돌보기 위해 시니어 창업이나 일자리 찾기에 혈안이지만, 자칫 달콤함보다 쓴 패배를 맛보기 일쑤이다.
초등학교 동창생 친구는 남편 퇴직금으로 서울 잠실의 한 백화점 델리코너를 인수했다. 퇴직 했지만, 몸은 건강하고 자녀 뒷바라지는 남아있기에 제2창업에 나선 것이다. 인터넷으로 컨설팅 회사와 접촉하고, 상권분석과 매출 보고서를 받았다. 창업컨설팅회사는 1억5000만 원만 투자하면 목좋은 백화점 델리코너를 인수하여 남편 월급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다고 유혹했다.
초교 짝꿍인 친구는 창업 세계가 냉혹한 정글의 법칙을 넘어 사기꾼이 득실거리는 곳이란 사실을 몰랐다. 평생 남을 속인 적이 없는 친구는 남도 그러리라 여겼다. 델리 코너를 팔려는 전 영업주의 말과 컨설팅사의 분석만 철떡같이 믿다가 피눈물을 쏟고 있다. 그들은 장사를 하고 싶으면 언제까지라도 백화점 영업을 계속할 수 있다고 속였다. 게다가 창업컨설턴트라는 전문가는 ‘10년에 하나 나올까말까한 특수상권 점포’라고 부풀려 소개하는 말에 넘어가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창업 계약서는 꼼꼼하게 읽는 앞면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뒷부분에 각종 독소 조항을 은밀하게 숨겨 놓는 것이 관행이거늘, 그런 사실조차 까맣게 몰랐다. 컨설팅 회사는 창업자가 서서히 창업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계약을 성사시켜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다.
친구가 인수한 매장은 이미 주변에 푸드코트가 예정되어 있어서 값어치가 떨어지는데도 그런 사실을 숨겼다. 오히려 최고 전성기 매출을 잡아서 과다한 권리금을 지불하게 만들었다. 수익은 떨어져도 순조롭게 굴러가던 델리코너는 엉뚱한 곳에서 일이 터졌다. 가게를 연지 딱 1년 만이었다.
친구는 델리코너의 메뉴를 개발해주고 삭자재를 공급하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영업계약을 맺고 있었는데, 이 프랜차이즈 본사는 서울 시내 다른 백화점 10곳에 비슷한 직영 계약을 두고 있었다. 말하자면 백화점과 직영 계약을 맺은 뒤, 불법으로 투자자를 모집해서 임대하는 이중계약을 맺고 있었다. 자연히 그늘의 계약자인 친구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기 어려운 구조였다. 백화점도 불법 전대 계약을 알면서도 모른체 묵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프랜차이즈 본사가 직영 계약을 맺고 있는 다른 백화점의 델리 코너가 위생 문제를 일으키면서 강제 퇴출되게 되었다. 강제 퇴출 명령을 받은 그 델리코너는 권리금을 다 잃게 되자 억울한 생각에 프랜차이즈 본사를 상대로 가압류를 걸었다. 가압류는 장부상 프랜차이즈 본사가 직영하는 것처럼 되어 있는 친구네 델리코너까지 들어왔다. 잠실의 친구네 델리코너가 입주해있는 백화점은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압류 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면 친구네 델리코너마저 퇴출시켜버렸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 죄 밖에 없다”는 친구는 자기가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백화점에서 퇴출당하고, 남편 퇴직금 1억5000만 원을 다 날리게 되니 우울증에 걸려 버렸다.
나는 한번씩 서울에 올라가면 싫다는 친구를 억지로 끌어당겨 햇빛을 쐬주며 말친구가 되어주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다. 거짓말과 사기, 과장과 억지가 횡행하는 창업시장의 복마전(伏魔殿) 비리는 친구 사례뿐 아니다.
유대인들은 죽어서 하늘나라 법정에 서면 첫 질문이 “너는 하느님을 믿었느냐”가 아니라 “너는 사업적인 거래를 정직하게 하였느냐”라고 믿고 있다. 신명기 25장 15-16절은 ‘너희는 정확하고 올바른 저울추를 가지고 있어야하고, 정확하고 올바른 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하느님은 불의를 저지르는 자는 역겨워하신다. 금전적인 면에서 신뢰가 가는 사람만이 종교적으로 신실하다.
최미화 논설실장은 대구가톨릭언론인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며,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거룩한 땅 성지」 「여성 1백년」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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