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울 중구 광희2동에 자리 잡고 있는 광희문은 1456년경에 세워진 성문인데 서울의 4소문 가운데 하나인 남소문(南小門)의 다른 이름이다.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에 위치한 이 남소문에 광희문이라는 현판이 1719년에 걸렸고 따라서 그 이후로는 남소문보다 광희문이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한편 광희문은 서울의 서소문과 함께 서울 도성 안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성 밖으로 운반해 나갈 수 있는 문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시구문(屍軀門)이라고도 하고 또한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위치에 비추어 볼 때 수구(水口)와 관련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수구문이란 아마도 시구문이라는 명칭이 변해서 형성된 변음(變音)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서울 도성 안에 전염병이 돌아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시체를 이 광희문 밖에 내다버렸다고 한다. 또한 천주교 박해 당시 포도청이나 의금부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되거나 옥사한 신자들의 시신도 이곳에다 버렸다. 예를 들면 1839년 기해박해 때 최양업(토마스)신부님의 아버지 최경환(프란치스코)성인의 시신도 광희문 밖에 내버려져 교우들이 매장해 두었는데 나중에 성인의 후예들이 부평 수리산으로 이장했고, 1846년 병오박해 때 포도청에서 교수형을 당한 성녀 김임이(데레사), 우술임(수산나), 성녀 이간란(아가타), 성녀 정철염(카타리나) 등 순교성인들의 시신이 이곳에 방치되어 있었다.

1867년 포도청에서 순교한 송백돌(베드로)은 충청도 충주 서촌의 양반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우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이후 송백돌(베드로)은 진천 배티 교우촌으로 이사하여 교우촌 신자들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에 가족 부친 베네딕토와 베드로의 처녀 딸, 베드로의 며느리 이안나, 그리고 안나의 아이 등 5명이 모두 체포되어 진천관아로 압송되고 다시 경기도의 죽산관아로 끌고 가서 가두었고 다시 한양의 포도청으로 이송하였는데 이 가족은 모두 신앙을 굳게 지킨 다음 순교하셨는데 그들의 시신 역시 광희문 밖 성벽 밑에 묻혔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뿐만 아니라 1866년, 1868년 등의 박해 때에도 도성 안에서 순교한 적지 않은 신자들의 시신들도 역시 바로 이곳에 내버려졌던 것이다. 순교자의 가족들이 그 시신을 찾아가지 않을 경우에는 순교자들은 이 광희문 근처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광희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을 누일 자리까지도 하느님께 봉헌한 여러 순교성인들이나 무명 순교자들을 기념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장소가 되었고 광희문 밖은 이렇게 순교자들의 죽음과 주검을 통해 성화되었다.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이 성화된 땅에 순교자들을 기리는 기념비와 순교현양관을 마련하는 일은 그 믿음의 후손들인 우리 형제자매들이 마땅히 완수해야만 할 과업이 되었고, 이곳은 순교자들의 믿음을 다시 해석함과 아울러 순교자들이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실천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소다. 이곳 광희문 밖에 순교자들을 기릴 수 있는 순교자 기념비와 순교현양관을 마련하여 역경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 새로운 신앙인으로 거듭 태어나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봉헌된 삶을 살아 갈수 있게 되길 기원합니다.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이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