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상잔의 포화가 멎은 지 60년이 넘었다. 정전은 전쟁으로 상처를 입은 국민들에게 안도와 함께 새 삶이 시작된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지만 정전과 함께 그 전쟁이 낳은 또 다른 아픔이 있었고 그 아픔이 60여 년 세월이 지난 오늘날까지 아물지 않는 상처로 깊이 남게 될 줄은 몰랐다.
전쟁으로 생기는 포로 문제는 적아가 다 골이 아픈 걱정거리이자 공동의 관심사이다. 일부 역사자료들을 보면 전쟁에서 포로가 된 국군이나 유엔군들이 소련으로 끌려가 강제 부역한 것이 1만2000명에 이른다고도 하고 전후에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가 560만 명이라고도 한다. 정전협정조인이 끝난 후에도 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전후 복구건설을 위한 노동현장에서 집단적으로 일을 시켰다.
물론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지역이나 직업을 선택할 권한도 없었다. 포로가 된 사람들은 남한 사람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정치적 박해를 받으며 직업선택의 자유조차 없이 노동 현장의 1선에 배치되었다.그러다 보니 젊은 나이에 대학공부도 못한 국군 포로들은 한생을 열약하고 힘겨운 탄광이나 광산에서 일하다 석탄먼지나 돌가루 때문에 또 다시 죽어나갔다. 그들의 가정에서 자식들이 태어나면 그런 집 애들과 잘 어울려 놀지도 못하게 했고, 또 그런 집 애들이 성장해 대학에 가려고 해도 아버지가 ‘국군포로’ 란 딱지 때문에 대학은 고사하고 군대 복무도 안 시킨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잘난 아이들도 탄광이나 광산에서 자신들의 부모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탄을 한생을 탄을 캐며 살아가야 한다.
이처럼 북한에 남겨진 포로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 자식 대에까지 정치적인 차별과 감시를 받으면서 대를 이어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북한은 응당히 포로교환 당시 보냈어야 할 남한사람들을 북한에 불법적으로 남겨놓았고 그들을 가지고 전후에 모자라는 노동력을 해결했다. 참으로 가슴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남한이 진작에 손을 써 데려 왔어야 할 이 나라의 아들들이 북한에서 정치적 박해와 고역에 시달리다 사라져 갔다.
그 하나하나의 귀중한 사람들은 분명 대한민국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었고 하늘같은 아버지 었을 것 이다.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며 육신이 오그라들고 기력이 다하는 날 까지 무사 귀환을 빌고 빌던 어머니들은 이제 한 많은 세상을 떠나가셨다. 그러나 그들의 형제자매들은 아직 살아서 돌아오지 않은 오빠나 아빠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으며 지금도 변함없이 기다린다. 많이 늦었지만 나는 그들의 기대가 분명히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국군포로들이 이제 남은 생이나마 그들의 고향인 대한민국에서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 알립니다
‘민족회해일치’ 칼럼은 평화통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북한 동포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가톨릭신문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mary@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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