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의 중요 이슈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는 어떤 문제에 가장 관심을 두고 계신지도 궁금하다. 40대 사람들로 꾸려진 소규모 강의에서 비슷한 질문을 던지니, 가족관계, 직장 내 인간관계를 더 좋게 만드는 일이라는 대답과 노후 준비나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는 대답도 나왔다. 사회 이슈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어 보인다.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아마 80% 이상의 사람들이 잘 모른다거나 관심이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렇듯 무관심한 태도를 드러내는 이유는 ‘먹고 살기 바빠서’, ‘남의 일에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지 않다’ 등의 사고와 태도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대개 주어진 업무의 해결과 그를 통한 눈앞의 이익이다. 세계적인 불황의 여파로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날이 갈수록 경제상황이 불안해지고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상승시키는 게 능사라거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튀는 행동을 하기도 신경 쓰이고, 그러다 남보다 뒤쳐지면 결국 나만 손해라는 발상이다. 이기주의와 대세 추종주의가 뒤얽힌 이런 심리상태와 행동방식을 드러내다보니, 내가 누구인지, 어떤 가치관에 따라 생활해야 하는지, 또 내가 어떤 공동체에서 살고 싶은 건지 등, 개인 각자의 정체성, 공동체의 정체성 문제 등에는 관심을 둘 여력이 없다.
심리학자 롤로 메이는 “중세기의 흑사병처럼, 현대인의 건강을 가장 크게 해치는 요인은 불안”이며, 불안해하는 요인은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사고 타인의 인정을 받는데 가치를 두기 때문”이라 말한다. 이렇듯 시선을 외부에 두면 남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결국 버림받고 홀로 남게 되지는 않을까 등의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또 이런 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자아의 존재성이 상실되었다는 생각에 빠져 자살 충동에도 쉽게 사로잡힐 수 있다고 한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 역시 현대인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불안’을 꼽는다. 알랭 드 보통은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이 특히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으려는 세속적인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정의한다.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등 5가지 요인들이 중첩되면서 현대인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불안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롤로 메이나 알랭 드 보통 같은 인문학자들의 견해는 현대의 전반적인 특징을 말한 것이지만, 세속적인 욕망 추구와 물질주의적 가치의 극대화는 한국 사회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1960~70년대 군사 권력에 의해 5년마다 이어진 ‘경제개발 계획’에 따라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단기간의 경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한국 사회는 국가적으로 ‘하면 된다’는 ‘성공 신화’에 매혹되어 왔다. 이 경향은 IMF 사태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능력이나 성향 상 이런 시류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인 패배감,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성공 신화’에 부응하지 못하면 곧바로 ‘루저’(패배자)로 취급당하게 되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거나, 도박같은 한탕주의, 물건에의 집착(쇼핑)과 성(性) 의존(중독증)과 같은 다양한 현실회피 증상에 빠지는 것은 ‘물질 만능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선택한 사회의 씁쓸한 뒷모습이다.
금융권 영업직으로 근무하던 후배가 최근에 직장을 그만 두었다. 발이 부르트도록 하루 100명 넘게 고객을 만나며 얻은 성과를 사무실 고위 간부들이 과도하게 착취하는 것에 시위를 벌였단다. 뒤에서 같이 불만을 토로했던 동료들은 막상 후배가 항의 시위를 벌이자 모두 등을 돌리더라고 했다.
후배의 아내는 고생길에 나선 남편의 모습을 안쓰러워했다. 돌쟁이 셋째까지 둔 후배 부부는 장애우 시설에 정기후원을 하고, 1년에 한 번씩 부부 프로그램에 봉사도 한다. 아이가 셋이면서 만용을 부린 거 아니냐고 할지 몰라도, 자본논리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기로 한 그의 용기 있는 선택에 ‘자랑스럽다’는 찬사를 보내 주었다.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내 삶의 최우선 가치는 무엇인지 성찰해 본다. 만나는 사람마다 안 바쁜 사람이 없다. 그러나 무작정 일에 휘둘리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일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는 있을까. 이웃 사람들과의 관계는 건강한가. 교회의 핵심 교리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그저 입에 발린 구호가 아닌지도 성찰할 일이다. 심리학자 스캇 펙은 ‘신경증은 언제나 정당한 고통의 대체물’이라는 칼 융의 말을 인용하여, “문제와 그 안에 내재된 정서적 고통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모든 정신질환의 원인”이라고 설파했다. 한국 사회에 딱 들어맞는 경고가 아닌가 싶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