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기 전날 미리 쪼개어놓은 감자를 심었습니다. 한 해 농사의 시작이 되는 감자는 심을 때마다 늘 기분 좋은 기대감을 가지게 합니다. 올해도 풍년을 기원하며 땅속 깊이 감자를 넣었습니다.
감자는 뿌리 작물이라 감자 자체가 씨앗이 됩니다. 감자 한 알을 씨눈에 따라 3~4조각으로 잘라 재에 버무려 뒀다가 자른 면이 어느 정도 굳어지면 심습니다. 다른 씨앗들도 그렇지만 감자는 자신의 몸으로 싹을 키웁니다. 때문에 6월에 감자를 캐보면 씨감자는 쪼그라들어 거의 형태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씨앗 하나가 땅에서 썩으면’이라는 성경 말씀이 확 와 닿는 모습이지요.
감자를 심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생명을 다 내어주고 썩어야만 더 많은 생명들이 자라게 된다는 것은 자연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공통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간혹 썩지 않고 남아있는 씨감자들이 있는데 그런 곳엔 감자가 거의 달려있지 않습니다.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해되는 모습이지요. 그런 자연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의아해 했던 예수님의 죽음은 자연의 이치에서 보자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생명을 주지 않으면서 다른 생명을 살릴 수는 없을 것이니까요.
부활을 향해 깊어가고 있는 사순 기간 동안 자신을 좀 더 깊이 성찰해보고 싶습니다. 제 맘속에 아직도 썩지 못하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정말 열매 맺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잘 썩게 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그래서 미사 때마다 제게 오시는 예수님의 생명을 제 삶 안에서 더 큰 생명으로 살아내고 싶습니다. 언젠가 그분을 마주 대하게 되는 날 그분을 향해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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