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알고 있는가. 내가 규정한 모습이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모습과 얼마나 일치되는가. ‘나는 누구인가’를 나타내는 개념인 정체성(Identity)은 ‘남이 뭐라 하든, 자기 눈으로 자신을 일관되게 보는 특성’을 말한다. 한 개인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한 집단의 정체성, 한 국가의 정체성(국민성)도 특징지을 수 있다. 모임에서 사람들과 자아정체성이나 사회적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자신의 심리이해와 관계에 대한 꾸준한 성찰을 통해 자아정체성을 명확하게 구축해가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사회적, 국가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어떨까. 마치 자신은 그 집단의 예외적인 존재이기라도 한 듯 “우리나라 국민성은 이래서 좋네, 안 좋네” 하며 남 이야기하기에 분주하다.
한국인 스스로는 자기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보고 있을까. 개인의 정체성을 살필 때 생애주기를 탐구할 필요가 있듯이, 한 나라의 정체성은 역사적인 경험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 1세기 사이 한국의 역사를 훑어보면, 전 세계적인 제국주의 확산에 휘말려 한반도 역시 36년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 경험을 했다. 외세에 의해 타율적인 근대화를 경험했고, 식민지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식민잔재를 명확하게 청산, 극복하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어 한국 전쟁으로 인한 민족의 남북 분단, 군사쿠데타에 의한 장기간의 군사독재, 군부에 의한 5.18 민주항쟁 등의 위기상황을 겪으면서 한국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눈치껏 행동해야 하고, 남들보다 빨리 대처해야 하는 생존 능력과 힘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변별하고 추종하는 능력의 개발에 더 민감해지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보니 한국인은 남성, 아버지, 상사, 연장자들에 대해 과도한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하며, 이것은 다시 사회관계로 확대되어 유력한 인물이나 사회적인 권력에 맹신하고 의존하는 사고방식을 보이게 되었다. 힘(금전적, 물리적)에 대한 불안과 공포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권위주의적 관행에 젖어들고 한국 사회 저변에 권위주의 문화가 탄탄하게 구축된 것이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일을 벌여도 “국가가 설마 국민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겠느냐”고 회피하면서 도리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폄훼하거나, 제도종교의 지도자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곧바로 ‘신앙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불손한 행동’으로 비난당하기 십상이다. 그리고는 그저 조용히 숨죽여 지내기를 바란다.
공포는 문화적으로 학습되기 때문에 하나의 강력한 교육수단으로 기능한다. 학생들이 처벌이 두려워 숙제를 잘 해 가고, 신자들이 신으로부터 벌을 받게 될까봐 규칙적인 의례행위를 지속하는 것이 간단한 예이다. 사회의 지배자들은 이런 두려움을 피지배자들에게 유용한 덕목으로 치환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너무도 자주’ 활용하고, 국민들은 이런 공포에 ‘너무도 자주’ 통제된다.
특히 요즘의 상황을 보면, 일련의 역사적 위기를 거치며 공권력에 대한 심각한 공포를 경험해 온 한국인들은 심리학 용어로 말하자면, 힘 있는 세력에 저항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심리상태, ‘정신적 외상증후군’(PTSD) 상태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한다. 폭력이 동반된 가족 갈등 상황에서 피해를 당한 가족 구성원들이 물리적, 심리적으로 완전히 위축되어 적극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다가 폭력가해자를 살해하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치닫는 경우나, ‘갑의 횡포’로 인한 사회적 갈등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등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물리적, 심리적, 언어적 폭력과 학대를 겪으면서도 일부 여성들이 혼인생활을 유지하는 이유는 그 생활을 떠나면 더 불행해지리라는 심리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학대 경험으로 자존감이 형편없이 낮아진 탓에 혼자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가해 배우자를 떠난다 해도 결국 아이들마저 잃고 목숨까지 위태로울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끈질기게 참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 사태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폭력과 그로 인한 공포는 그저 견디면서 막연한 희망을 품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창의적인 방식으로 발전되고 연장된다.
스스로는 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고 자신보다 더 큰 힘을 지닌 존재가 앞에 나서서 자신을 통제하고 인도해 주리라 믿는 경향은 ‘매 맞는 여성’의 심리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깊이 숙고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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